이윽고 우간다에서 뉴수단으로 비행할 19인승 쌍발 경비행기에 탑승했다.아침에 숙소로부터 공항으로 이동하는 도중 도로 한복판에서 자동차가 고장 나서 고생했듯이 경비행기도 미덥지 않기는 마찬가지로 불안한 생각이 엄습했다.비행기가 비행 중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갑자기 ‘고장이 나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의 생뚱맞은 걱정이 뇌리를 스쳤다. 비행기가 엔테베공항을 이륙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시간이 오전 10시 15분이었다.기장은 이륙하기 전에 우리가 기착할 목적지인 뉴수단 내 나콰톰(Nakwatom)까지의 비행시간이 약 1시간 35분 정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인연5.16 직후인 1961년 8월, 밀서 한 통이 극비리에 현해탄을 건넜다. 수신인은 일본 정계 거물인 기시 전 수상(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조부), 발신인은 쿠데타에 성공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였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밀서가 지난 2001년에 공개됐는데, 한일국교에 대한 은밀한 얘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석 달 후 현해탄을 건너간 박정희는 기시를 만나 밀담을 나눈다.이 둘의 긴밀한 관계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기시는 만주국 핵심 관료 출신이고,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를 나온 만주군 장교 출신
천지왕의 왕궁 ‘백제궁’으로 확인자신의 왕궁을 ‘백제궁’이라 이름 짓고 ‘백제대사’라는 절까지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서명왕이 당시 수도인 아소카에 지었다는 ‘백제대사’는 1997년 발굴되었는데, 일본 학계를 놀라게 했다. 전형적인 백제 양식인 판축 기법에다 백제식 문양의 기와가 쏟아져 나왔다. 절의 크기는 일본 사찰의 최대 규모로 3만㎡ 나 됐다. 기록에는 백제 대탑인 9층 탑이 있었다고 한다.더군다나 9층 탑의 존재가 사실로 밝혀졌다. 높이 100m의 거대한 탑으로 일본 최고의 히메지성과 나라현 약사절의 탑보다 더 높은 것으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본 교통사고로 인한 주검이 자꾸 뇌리를 스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나마 일행들과 마신 술기운으로 마음을 다소 안정시키면서 잠시 시가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런데 상업은행 한쪽 벽에 젊은 남녀가 부둥켜안고 한 몸이 되어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러한 행동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우리의 성문화(性文化) 정서로는 치욕적(恥辱的)인 부끄러움과 남을 의식하는 도덕적 관념을 중시하고 있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성문화는 우
PC방에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무스타파를 통해 콩고인들이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고 한다는 전갈을 전해 들었다.그러나 내일은 우리 일행이 뉴수단 정부 요인들과 비행기를 타고 수단으로 들어가야 할 일정이 이미 약속되어 있었기에 다음 주 화요일에 오라고 연기시켰다.저녁 시간이 되자 우리는 낮에 마트에서 사가지고 온 안줏거리에 한국에서 가지고 온 소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역시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는 일은 K사장이 도맡아 했다. 방청소와 세탁 그리고 설거지는 현지인이 처리해 주었다. 잠시 앞에서 밝히지 않은 일이 한 가지
파병을 진두지휘한 일본의 제명여왕일본서기에는 당시 일본의 백제 부흥 지원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파병을 위한 무기와 물자, 그리고 군사까지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내용이 자세히 실려 있다. 일본서기 기록을 살펴보면 파병을 위해 모든 국력이 집중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파병에 대한 모든 준비는 당시 일본의 여왕이었던 사이메이, 즉 제명여왕이 직접 맡아서 이루어지고 있었다.660년 10월 제명여왕은 아소카 궁에서 백제의 사신을 만나 복신의 서신을 받는다. 제명여왕은 신속하게 파병을 결정하고 항구도시 오사카로 거처를 옮
안전불감증이 만들어낸 예고된 인재였다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29일(토요일) 밤 10시 15분 핼러윈 축제가 진행되고 있는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좁은 내리막길에 한꺼번에 인파가 몰리며 누군가 넘어졌다. 뒤따르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넘어지고 겹겹이 쌓여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SNS에서는 3~4년 전의 해밀턴 호텔 옆 골목 사진이 공유되면서 ‘예고된 인재’라는 비판 댓글이 쇄도했다.소방당국은 31일 오전 8시 30분 기준 사망자 154명 부상자 149명이라고 밝혔다. 부상자 중에서 중상자가 33명 정도로 사망자가 더
동아시아 최초, 최대의 국제해전660년 백제 멸망, 668년 고구려 멸망, 676년 당나라 축출. 삼국통일의 역사적 과정이라고 학창 시절에 배웠다. 그리고 백제 부흥 운동과 고구려 부흥 운동도 삼국통일을 적시한 교과서의 한 모퉁이에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663년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해전이 한반도 서해안에서 발발한 사실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았다. 필자가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해전을 글로 옮기는 이유다.동아시아 국제해전에 대하여는 1594년 명이 참여한 임진왜란,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으
정부는 ‘메타버스 신산업 선도전략’을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2026년까지 세계 메타버스 시장점유율 5위 달성 ▲메타버스 전문가 4만 명 양성 ▲메타버스 공급기업 220개 육성 ▲메타버스 모범사례 50건 발굴 등을 목표로 플랫폼·인재·기업·국민공감의 4대 전략을 제시했다.메타버스는 이제 막 시작된 버전인데도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메타버스 실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감’이다. 어느 정도 ‘실감’을 구현하느냐가 이 세상에서 ‘소비자’로 지낼지 ‘생산자’로 지낼지를 결정짓는다. ‘라떼는 말이야’로 지내면 ‘소
그런데 모든 자동차들마다 유리창에 차량번호가 조각(彫刻)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자동차 유리에 차량번호를 새겨놓은 이유는 차량 도난사고가 너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도난차량을 쉽게 식별해서 찾아내기 위한 방법이라고 했다.대부분의 캄팔라 시민들은 중고차를 수입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차령이 오래된 차량은 부품 조달이 원활하지 않았다.만약 차량이 고장 날 경우 오래된 차량은 부품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차량을 홈쳐다 이를 분해해서 부품을 밀매하는 행위가 성행하고 있다고 했다.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대형 버스가 이곳 캄팔라 시내
땅바닥에 펼쳐놓고 팔고 있는 신문의 헤드라인(headline)의 큰 글씨는 우간다 국민이 한 해에 소비하는 콘돔 수량이 1억 2천만 개라고 적혀 있었다.우간다 국민 수가 약 2천만 명인데, 그중에 성인을 절반 정도로 치고, 또 남녀 한 쌍이 사용한다고 볼 때 1인당 평균 몇 개나 사용하는지 계산해 봄직하다.후진국일수록 국민소득은 낮지만 놀이문화가 발달되어 있고, 특히 성(性, sex)문화가 난무하게 개방(?)되어 있다고 들은 바 있다.아마도 이곳 우간다 국가도 바로 그런 나라들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우간다는 이미 오
이튿날 아침식사를 마친 후 시내를 구경할 겸 Mart를 찾았다.Mart는 우리나라의 일반 할인마트와 유사했지만 상품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공산품의 대부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제품으로 조잡하기 짝이 없었고, 품질도 매우 낮아 보였다.맥주와 음료 등도 모두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부터 수입한 것들이었다.장기간 체류해야 하는 우리는 숙소에 두고 사용할 일반 생활용품을 비롯하여 주식인 쌀과 채소, 육류 등 부식을 구입했다.쌀의 모양은 매우 길쭉했고, 윤기가 없어 보였다.사과와 무, 배추, 고추 등도 있었지만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재래종처럼 아주
잠시 후 점심시간이 되자 약속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매우 큰 중화요리집이었다.음식점 출입구 중앙에 ‘立春大吉(입춘대길)’이라고 아주 큰 글씨로 쓴 족자가 걸려 있었다.그리고 식당 건물 중앙에 수영장(swimming pool)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었고, 수영장 주변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리가 배열되어 있었다.식당에 우리 일행이 먼저 도착했다. 이어서 바로 뒤따라 뉴수단 총리 등 일행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중앙에 쿨 총리를 앉히고, 왼쪽 바로 옆에 촐 재경부장관, 그리고 장래의 케냐 대사, K사장 순으로 앉았고, 오른쪽
나는 당초 뉴수단 정부 요인들과 만나는 상대가 한 국가의 국무총리와 장차관급들이었으므로 회의장소의 자리 배열에 신경을 썼으나 K사장이 여기서는 그런 일에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그들은 그런 일에 권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중앙의 좌장격 자리인 1인용 의자에 재경부 장관인 촐이 앉았고, 쿨 국무총리는 3명이 앉는 긴 소파의자에 나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그들은 그저 본인이 앉는 자리가 편하면 그만이었다. 서로 공식적인 첫인사 소개를 마치고, 이들이 제안하는 프로젝트와 관련한 본격적인 사업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내의 개인 주택들이 깨끗하게 한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아침식사를 짓는 연기가 피워 오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전 회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각 집집마다 몇 그루씩의 나무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곳 사람들의 주식이 바나나이기 때문에 대부분 집안에 바나나 나무를 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나나 열매 값은 매우 싸다고 한다.엊저녁의 과음 탓인지 입맛이 없어서 우리는 아침식사를 간단히 라면으로 대신했다.오늘(10월 3일) 우리 일행은 오전 11시(한국 시간 오후 5시)에 뉴수단의 국무총리, 재경부 장관 등과
그럼 그 대가는 얼마냐고 물었더니 US $15이라고 했다.그렇다면 one time이냐 아니면 one night이냐고 다시 물었다.그녀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one time으로 두 세 시간 정도를 같이 지내주는데, 원하면 더 같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그러면 같이 있을 때 나에게 보여줄 네 모습을 여기서 잠깐 보여 달라고 했더니 그녀는 쾌히 응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아주 유연한 몸동작으로 허리와 힙(Hip)을 간드러지게 요리조리 돌리면서 아프리카 특유의 춤 모습을 보여 주었다.정말 춤을 추는 몸동작이 너무 유연하
노천에서 마시는 술 파티는 그런대로 분위기가 참 좋았다. 우리 일행은 모두 여덟 명으로 당초 한국에서 같이 출장을 온 여섯 명과 K사장 그리고 현지 사업파트너 무스타파 등 여덟 명이었다.무스타파는 원래 에리트레아(Eritrea) 사람으로 가족이 현재 에리트레아 수도 아스마라(Asmara)에 살고 있는데, 혼자 우간다(Uganda)의 수도(Capital city) 캄팔라(Kampala)에 와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맥주를 한 병씩 병째 마시기도 하고, 컵에 따라 마시기도 하는 등 아무튼 분위기가 무르 익어갔다.담배를 피우다 보니
이곳 아프리카 지역의 사업 파트너인 무스타파와 함께 밖으로 나갔던 K사장이 되돌아왔다.그는 오자마자 능숙한 솜씨로 쌀을 씻어 밥을 짓고, 마트에서 사가지고 온 부식 재료로 김치찌개를 끓이는 등 우리게 제공할 저녁식사를 준비했다.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밥솥에 많은 양의 물을 부어넣기에 물이 너무 많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K사장은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곳 쌀은 우리나라 쌀로 밥을 지을 때보다 약 4배 정도의 물이 더 소요된다고 했다.그는 아프리카에서 10년이 넘도록 장기간 생활을 하고 있기에 경비절감 차원에서 우선 식생활부터
뉴수단 정부에서 요청한 비즈니스와 관련하여 우리와 함께 할 사업파트너인 현지 사업가 무스타파(Mustafa)가 공항에 나와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무스타파는 현재 우간다(Uganda)의 수도(capital city) 캄팔라(Kampala)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대표(CEO)였다.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원래의 국적이 우간다가 아니었고, 에리트레아(Eritrea)였다.그의 회사 직원이라고 하는 무하마드(Muhammad)와 몬슈(Monchou) 등 두 사람도 함께 우리를 반겨 주었고, 입국신고서를 대신 작성하
한참동안 빅토리아 호수상공을 횡단한 비행기는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이자 마지막 기착지인 호수 북단의 우간다 엔테베국제공항에 도착했다.이렇게 우리가 마지막 비행을 마친 시간이 우리나라 시간으로 저녁 8시 50분(현지 시간 오후 2시 50분)이었다.그러니까 한국 시간으로 계산하면 어제(1일) 오후 6시 2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다음날(2일) 저녁 8시 50분(서울시간 기준)에 도착했으니 무려 26시간 30분 만에 엔테베공항에 도착한 셈이다.중간 기착지에서 비행기를 환승하기 위해 잠시 대기한 시간(5시간 30분)을 제외하면 실제 비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