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 세계대전사(4)

신항식 주필l승인2019.08.14l수정2019.08.1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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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항식 주필

1919년 6월 28일. 페르디난드 대공이 암살된 지 5주년이 되는 바로 그날, 프랑스 베르사이유에서 세계대전의 주판알이 튕겨졌다. 베르사이유 조약이다. 좁은 ‘거울의 방’에 몰려든 사람이 200명이 넘었다. 대다수가 월가와 런던시티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의 은행가들이었다. 이들은 또한 프리메이슨이라는 거대 자본가 네트워크의 핵심 멤버들이었다. 전쟁 종식 후 조약식장에 200 여명의 은행가들이 몰려 왔다는 사실을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그것이 전쟁의 현실이었다. 좀 더 살펴보자.

대공의 암살이 벌어지자 오스트리아 경찰은 즉각 테러군대, ‘검은손’(Crna Ruka; Black Hand)에 주목했다. 이 조직은 프리메이슨의 세르비아 ‘테러조직’이었다. 당시 프리메이슨은 보스니아를 세르비아에 병합시켜 ‘발칸 통합시장’ 즉 유고슬라비아를 만들고자 했다. 암살범들이 추구했던 대 세르비아(Greater Serbia, 유고슬라비아)라는 것은 애초부터 민족해방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상이었을 뿐, 실제로는 발칸시장 통합을 위한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검은손’은 세르비아의 정보부장 디미트리예비치(Dragutin Dimitrijevic)대령과 탄코시치(Voja Tankosic) 소령이 만들었다. 디미트리예비치는 1903년 세르비아의 알렉산더 1세를 암살하고 미국통 피터 1세(후일 적십자사 총재)를 왕으로 추대했다. 백방으로 드러난 암살과 쿠데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멀쩡하게 군인으로 복무했다. 그만큼 세르비아 등 발칸의 체제와 국민의식이 느슨했다. 이들은 정부와 군대도 움직였다.

프린싶과 카브리노비치의 직속상관은 세르비아의 경찰공무원 시가노비치(Milan Ciganovitch)였다. 1918년 미 해군이 출간한 법정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14년 봄부터 두 소년을 포함한 ‘청년 보스니아’ 암살단 7명이 국경을 넘도록 해 주었다. 또한 소년들에게 총 쏘는 법과 폭탄투척을 연습시켰다. 영국의 발칸전문가 던햄 여사(Mary Edith Durham)는 1917년 대공 암살사건을 조사하면서 3월 1일 법정진술 상황을 아울러 기록했다. 판사가 “지금 동화책 읽느냐?”며 어리둥절했던 진술이었다.

“-프린싶: 시가노비치는 자기가 프리메이슨이라고 말했어요. 롯지에서 태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더군요. 암살을 조직한 사람은 카즈미노비치(Radoslav Kazimirovitch) 박사라고 했습니다.

-카브리노비치: 네, 그 사람 프리메이슨이예요. 조직상부 어딘가에 있는데, 암살이 결정되니까 갑자기 대륙으로 여행을 떠나 러시아, 프랑스, 헝가리에 가 있더군요. 내가 일이 어찌되느냐고 시가노비치에게 물을 때마다 “그가 돌아와야 안다”고 대답했죠. 프리메이슨이 이미 2년 전에 황태자 제거 결정을 내렸는데 일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말하기를 “그가 어젯밤에 부다페스트에서 돌아왔어”라면서 브라우닝 권총과 탄창을 나에게 주더군요. 여행이 우리 일과 관련이 있었고 그 사람이 해외의 어떤 단체와 협의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죠.“

-판사: 지금 동화책을 읽고 있습니까?

-카브리노비치: 아뇨. 판사님이 검은손을 조사한 자료보다 수백 배는 더 확실한 진실인 걸요.“

검은손은 세르비아의 프리메이슨 ‘민족수호’(Narodna Odbrana)의 하부조직이었다. 헝가리 언론은 이 조직을 대공암살의 주도자로 지목하고 있었다. 이는 제국의 정부에게도 보고된 내용이었다. 황태자 암살 건같이 큰일을 검은손이나 세르비아 본부(제네바 소재)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러시아와 헝가리의 대형 프리메이슨, 무엇보다 프랑스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이로써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프리메이슨이 모두 승낙한 암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브리노비치의 증언대로 암살 2년 전에 이미 계획된 것이었다.

1932년 4월 13일 자, 독일 알게마이네 차이퉁과 1955년에 실시된 새로운 조사에 따르면, 암살 기획자 디미트리예비치 대령이 7명이 아니라 10명의 테러리스트를 사라예보 주요 거리에 깔아 놓았으며 이를 위해 러시아 대사관의 무관 아르타모노프(Artamonov) 대령으로부터 자금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아르타모노프는 나중에 러시아 국적을 버리고 유고슬라비아 외무부 소속 소련담당관으로 활약하게 된다. 유고슬라비아가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가를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처럼 대공의 암살은 민족해방을 부르짖던 청년 혁명가의 움직임이나, 대공의 정책에 불만을 가진 세르비아나 헝가리 정부 등 국가적 차원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결론으로, 대공의 암살은 유럽의 금융과 산업체를 움직이던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의 프리메이슨이 조직한 일이었다. 프리메이슨은 자유주의 사상으로 뭉친 국제주의자들이기 때문에 행동하는 데에 국적이 없었다. 아군도 적군도 없었다. 자신을 제외한 세계 모두가 적이었다. 18세기에는 민주공화정을 만들어 왕정 및 가톨릭교회 체제로부터 그들의 자산과 생산수단을 약탈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프랑스혁명은 제레미 밴덤이 지휘한 이들의 18세기 마지막 작업이었다. 마르크스는 뜬금없이 이들을 뭉뚱그려 ‘부르주아’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자나 착취하는 단순한 산업자본가들이 아니었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을 통제하고 화폐 단위를 조절하며 유럽 각 왕실과 지자체에 대출을 해주는 동시에 거대 산업분야로 진출하던 초국적 법인체들이었다. 구성원은 주로 왕위계승에서 밀려난 왕족과 부동산 귀족들 그리고 유태인을 포함한 은행가와 산업체 관계자들이었다. 대다수가 유럽 전역에 퍼져 있었지만 모일 경우에는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영국을 중심으로 뭉쳤다.

19세기에는 영국을 중심으로 제국주의 해상활동을 지원했고, 동인도회사를 직접 운영했으며 17세기부터 발판을 다져 놓은 새로운 금융 및 산업시장으로서 미국을 겨냥하고 있었다. 즉 프랜시스 베이컨 이래 유럽과 미국을 잇는 문화 및 경제적 연대로 자라온 대서양주의자들(Atlantists)이었다. 결국 이들은 교황청에도 줄을 이었는데 17세기부터 예수회에 조심스레 접근하여 세력을 키웠다. 19세기 초반 교황의 의심을 받자, 얼굴을 수시로 바꾸며 결국 1877년 P2라는 바티칸 금융권 내부에 자리를 잡았다. P2는 1981년 해체 되었지만 교황을 갈아치울 수 있을 만큼 추기경 세계에 깊숙하게 들어가 버렸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가 두 암살범의 법정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프리메이슨의 존재 때문이었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프리메이슨은 ‘음모론’이라는 재미있는 언론조작에 파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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