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항식 주필

제 1차 세계대전. 국가가 벌이지 않은 전쟁에 국가가 수동적으로 끌려 들어간 이 요상한 프리메이슨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1910년에 발간되어 전 유럽에 퍼져나간 에인젤(Norman Angell)의 책 ‘거대한 환상’(The Great Illusion)을 훑어보아야 한다. 에인젤은 오늘날의 사무엘 헌팅턴과 같은 자였다. 헌팅턴은 자본가들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것은 약탈 전쟁이 아니라 문명의 충돌”이라고 예방 변명을 했다. 의도를 가졌든 아니든 에인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유럽에서는 정직한 지식인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유럽의 각종 전쟁이 자본가들의 전쟁이라 비판하고 있었다. 에인젤은 그러나 산업국가간의 전쟁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승리한다 해도 이득 될 것이 없다고 했다. 산업국가가 모인 유럽에는 자본가들의 금융과 산업이 서로 촘촘하게 엮어져 상호의존(interdependence)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대전 같은 것이 일어나 각 국가에 상호 투자된 자본과 자산이 파괴되기를 바라는 이는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마음을 놓았으며 자본가들에게 믿음을 주었다.

그러나 전쟁은 일어났다. 때문에 그의 주장은 사무엘 헌팅턴만큼 틀린 것이고 제목만큼이나 환상이었다. 1990년대부터 시작한 미, 영, 불의 이슬람과의 전쟁은 문명이 충돌해서가 아니라, 이슬람 내부의 내전을 핑계로 인도주의적 개입을 한다면서 영, 불, 미군이 현지로 들어간 약탈 전쟁이었다. 1910년대 당시 자본가들 사이에는 경쟁이라면 몰라도, 에인젤의 주장처럼 상호의존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자본과 산업의 줄기찬 독점만이 있었다. 이는 토마스 피케티의 통계를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전쟁은 돈 많은 소수가 일으킨 것이다.

수없이 많은 비밀 회담들이 유럽과 미국 각지를 오고갔기 때문에 제 1차 대전의 명백한 진실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시간을 순서적으로 따라가 원인을 찾으려 해서는 역사를 이해할 수 없고, 결과를 경제, 정치, 군사, 문화 항목별로 먼저 찾고 나서 거꾸로 원인을 추적해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바른 인식을 얻어가게 한다. 즉 누가 사건의 결과물을 얻었는가(Cui bono?)를 먼저 주목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든 독일이든 영국이든 프리메이슨이 대공암살을 통해 유럽전쟁을 기획하고 이를 성공시키고, 베르사이유 조약을 통해 결과물을 얻어갔다면, 유럽전쟁을 통하여 얻은 결과가 무엇인가를 먼저 살피면 된다.

제 1차 대전의 결과로서 영 순위는, 자본이 통폐합 되어 독점 재벌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에인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자본가들이 상호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M&A로 자본이 집중하고 있었고 집중되었다. 쿤&롭, J.P. 모건, 도이치뱅크 등 몇 개 자본회사만 모이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고 황폐한 국가를 재건함으로써 수십 년 동안 다시 돈을 만질 수 있었다. 정상적인 투자와 기업운영을 통해서 돈을 벌기보다, 전쟁과 재건을 통해 버는 것이 더 수익률이 높은 것이다. 더 나아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대출을 해 줌으로써 해당국가의 정치를 장악할 수 있었다. 정치권에 로비를 하여 기업을 구질구질하게 이끌지 말고 아예 정치를 장악해 버림으로써 기업의 세계를 만들자는 세실 로드의 기업경영 철학이 정석이 되어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그것이 1919년 베르사이유 조약이었다. 베르사이유의 좁디좁은 거울의 방에 200명이 넘는 월가 및 런던 시티 금융가들이 모여 들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 1차 대전의 세부적인 결과로서 첫째, 유럽 전쟁에서 거대한 물자가 소비되었다는 점이다. 그 물자는 전쟁터가 아닌 영국, 그리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에서 왔다. 자본가들은 투자자본을 영국과 미국에서 원격으로 작동시키면 되는 것이었다. 투자자금과 물자에 대한 상환처리는 승전과 패전 국가를 수십 년간 옥죄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한다.

둘째, 러시아 제국이 미국 월가의 자금을 받은 유태 혁명가들에 해체 되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러시아의 시장은 1917년에 이미 확보되었다. 독일과 더 오래 싸워도 문제가 없었지만, 전후처리에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레닌의 러시아가 낄 필요가 없었고, 물자와 인력을 직접 끌고 온 미국이 전쟁에 개입을 약속한 이후로는 러시아가 당장 전쟁에서 빠져도 무리가 없었다. 게다가 러시아의 정치구도와 시장을 안정시킬 필요도 있었다. 레닌은 결국 1918년 내분을 핑계로 전쟁에서 물러났다.

셋째,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제국도 모두 해체 되었다. 국체를 갈기갈기 쪼개서 이들로부터 보상금을 받아 내면 되는 것이며, 이 두 제국이 공동으로 실행하던 모든 종류의 산업 및 유통 프로젝트를 올 스톱 시키고 필요한 분야에 자신들이 직접 틀어갈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몰려든 미국 및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의 민영기업을 보면 된다. 이로써 영국과 미국 자본가들은 동부와 남부 유럽의 독립정부 자체를 손아귀에 넣고 흔들 수 있었다. 유고슬라비아를 세워 영국, 러시아, 터키, 독일의 서로 다른 대항마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넷째 오토만터키가 해체되었다. 중동을 영국과 프랑스가 장악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을 유태 시오니스트가 장악했다. 이는 나중에 더욱 세부적으로 다를 것이다.

첫째, 둘째, 셋째는 자본가들이 오랫동안 원했던 1) 소수로 향하는 자본집중 2) 재벌들의 유럽 시장통합과 금융 네트워크의 확대 3) 지속적인 현금순환 및 게르만 지역 금융장악을 실현했다. 게르만과 슬라브의 넓은 곳에서 오랫동안 돈을 벌고 싶은 것은 새로운 욕심이 아니라, 18세기 계몽시대 이래 끝없이 추구해온 프리메이슨 자본가들의 욕망이었다. 국가와 국민은 예전처럼 이들에게 이용당한 것뿐이다.

이들이 덤으로 얻어 온, 진정 새로운 것이 있다면 오토만제국의 붕괴로 인해 중동이 허허벌판이 되었다는 점이다. 즉 4) 중동의 유전이 장악된 것이다. 프리메이슨이 원했던 것은 1), 2), 3)과 동시에 4)였기 때문에 세계전쟁을 치루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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