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찬송가집 탄생의 산파였던 피터스(한국명 ‘피득’) 선교사 기념비 세운다

▲ 알렉산더 피터스 선교사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이승희 박종철 김성복 목사)과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회장 박준서 목사)는 22일 오후 서울 새문안교회 새문안홀에서 ‘한국교회가 기억해야 할 구약성경 번역자 알렉산더 A. 피터스 목사(한국명 피득)’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박준서 박사와 주강식 목사(증산로교회)가 주강사로 나서 △‘구약성경 최초의 한국어 번역자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 △‘한글 성경이 한국교회와 사회에 끼친 영향’ 등을 주제로 발제했다.

알렉산더 피터스(한국명 ‘피득’ Alexander Albert Pieters, 1871~1958)는 1911년 최초의 한글 구약이 ‘구약젼서’라는 이름으로 출판됐는데 중심 역할을 한 사람이고, 그 이전에 시편 일부를 한국어로 번역한 ‘시편촬요’를 1898년 출간했다. 한글 신약성경은 존 로스 목사에 의해 1882년 만주에서 누가복음을 시작으로 요한복음이 출간되었고, 1887년 신약전서 예수셩교전서가 번역, 출간되었다. 구약성서는 이 보다 24년이 늦게 완역된 것이다. 그러나 피터스에 의해 그가 한국에 들어온 지 불과 3년만인 1898년, 신약성서가 번역되고 2년 후에 시편 일부가 번역되면서 구약 번역이 본격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뿐 아니라 시편을 번역하면서 동시에 14편의 시편을 찬송가로 가사화했으며, 이사야 53장을 두 편의 찬송가 가사로, 사무엘상 2장에 나온 ‘한나의 기도’를 한 편의 찬송가 가사로 만들었다. 피터스가 작사한 총 17편의 찬송가가 ‘찬셩시’ 제2판에 수록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가 ‘주여 우리 무리를’(75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383장)를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업적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신약을 최초로 번역한 존 로스 목사는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용인에 ‘로스 기념관’을 건립해 그분의 공적을 기리고 있는데 반해, 피터스 목사는 미국으로 돌아가 그가 묻힌 초라한 무덤뿐 그 흔한 기념비 하나를 세우지 않았다. 이것은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그가 남긴 고귀한 업적에 대한 평가의 부재이고, 또한 우리가 날마다 읽고 있는 성서에 끼친 그의 수고를 생각한다면 한국교회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역사 사료를 통해 다음세대를 교육하고 그 유산을 물려주는 데에도 손실이라 할 것이다. 

▲ 피터스 선교사 기념 심포지엄 (22일, 새문안교회 새문안홀)

   

기념사업회 회장 박준서 박사는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한국 교회는 피터스 목사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가 이룩한 공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경 말씀을 사랑하는 이 땅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에 동참에 달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회장 박준서 박사)는 앞으로 피터스 목사의 업적을 기록한 기념비를 묘소에 세우고 양화진에 안장된 피터스 목사의 부인 엘리자베스 캠벨 여사, 에바 필드 여사 묘역에도 피터스 목사의 공적비 설립을 추진한다. 또한, 해마다 피터스 목사의 업적을 기리는 '피터스 목사 기념강좌'를 개최하고 '피터스 성경연구원' 개설도 준비 중에 있다.

피터스 목사는 1871년 제정러시아시대에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히브리어로 된 기도문과 시편을 암송했다. 피터스 목사의 본명은 ‘이삭 프룸킨’이었다. 성인이 된 후 일본 나가사키에서 미국인 선교사 피터스를 만나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됐다. 세례를 준 선교사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이름을 개명했다. 피터스 목사는 이후 미국 맥코믹 신학교(1900~1902)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신학교로부터 독일 유학 특별 장학생을 수여 받았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 가서 할 일이 있다”며 장학금을 거절했다. 러시아어 히브리어 독일어 등을 통달한 그는 한국에 와서 2년 남짓 한국어를 배운 후 시편을 한국어로 번역해 ‘시편촬요’를 냈다. 1904년 성경번역위원회 위원으로 구약성경 번역 작업에 동참했고, 1911년 최초로 구약 전체가 한글로 번역된 구약성경 ‘구약젼셔’가 출간됐다. 1931년부터 개역 작업은 피터스 목사의 주도하에 진행됐고 1938년 ‘개역구약성경’이 출간돼 큰 결실을 보았다. 1941년 70세로 은퇴한 피터스 목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 패서디나시에서 말년을 보내다 1958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미국 패사디나 마운틴뷰 공동묘지(Mountain View Mausoleum)에 있는 피터스 선교사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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