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물가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0%를 기록했다. 소수점 세 자릿수까지 따지면 -0.038%다. 마이너스 물가는 1965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물가 비상벨은 한국은행에서도 울렸다.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는 -0.7%로 13년 3개월 만에 최저치다. GDP 디플레이터는 소비자물가지수, 생산자물가지수, 수출입물가지수 등 국민소득에 영향을 주는 모든 물가 요인을 포괄한 종합적인 물가지표다.

통계청은 저물가 요인으로 농축수산물 가격과 국제유가의 하락을 꼽았다. 소비 부진보다는 공급 측 요인이 크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도 “수요 측 요인보다는 공급 측 요인에 상당 부분 기인한 것으로 디플레이션(장기적인 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상황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급측 요인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저물가 현상이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부진과 함께 일어났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에서 소비와 성장의 부진은 심각한 상황이다. 한은의 소비자동향조사에서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92.5로 2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한은의 어제 발표를 보면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1.0%로 속보치보다 0.1%포인트 낮아졌다. 9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한 수출 부진 영향이 컸다. 한은이 전망한 올해 성장률 2.2%는 물론 2%선에 턱걸이할지도 불투명해졌다는 우려가 높다. 더구나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교역조건 악화로 전년 동기 대비 0.3% 증가에 그쳤다. 소비와 소득, 성장이 깊은 침체의 수렁에 빠졌다는 위기의 신호다.

작금의 저물가 현상을 일시적인 외생 변수 탓으로 돌리기는 쉽다. 하지만 우리 내부에 잠재된 원인을 무시하면 경제의 병증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 침체 속에 소비 위축이 심화하면 생산과 소득이 연쇄적으로 악화하는 경제 무기력증에 빠져들 수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우리에게도 발병할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미·중 무역전쟁, 한·일 갈등으로 경제 불안심리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총력을 쏟아야 한다. 재정과 통화정책 대응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반기업적인 소득주도성장을 중단하고 기업 환경을 개선하는 일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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