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공간 활용, 과밀한 도시의 효율적·입체적 이용 가능케 하는 대안으로 부상’

‘공적 사회기반 시설과 연계된 사랑의교회, 도시공간 활용과 공공적 가치의 역사적 의미 부여받기에 합당.’

▲ 안장원 회장

지하도시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도시의 인구밀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지하 공간을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20세기부터다. 건물에 지하층을 만들었고, 지하철이 생긴 뒤에는 지하공간이 더 적극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최근 우리나라도 도시계획 차원에서 종합적 지하 공간 개발 계획을 수립, 착수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강남·북 주요 거점에 대규모 ‘지하도시’를 계획 중이다. 서울 삼성동 영동대로 지하화 사업을 비롯해 용산역 전면 공원 지하 공간개발 사업, 서울시청과 광화문-을지로상가-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잇는 대규모 지하 공간개발을 본격적으로 착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이 전 국토의 70%를 차지하여 가용 평지가 좁은 국내 지형 특성과 가용부지 비율이 이미 한계에 도달하였고, 초과밀한 도시 인구밀도 등 요인으로 지하 공간의 활용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당면 과제로 인식된다.

도시의 지하, 열린 공간으로 변모

▲ 사랑의교회 광장은 보행자들의 이동통로로 개방되어 있으며 주요 행사를 주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은 서리풀페스티벌(2015) 행사)

거미줄 같은 현재 서울의 지하 공간에서 그 지하는 과연 어디까지 소유권이 인정될까.

지하 공간(underground space)은 상업적 또는 공공적 목적을 위하여 자연 상태의 지표면 아래 자연적 또는 인위적으로 형성된 공간자원을 통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지하공간’이 일부 ‘기반시설’로 규정되고 있으며, 도시 차원에서 도시구조와 도시공간을 고려한 지하공간개발지구의 선정 또는 계획적 개발을 유도할 수 있는 근거는 미흡한 상황이며 지하공간에 대한 법적 정의나 총괄 법령은 없다. 하지만 토지소유권 범위에 대해서는 민법 제212조에 ‘토지의 소유권은 정당한 이익이 있는 범위 내에서 토지의 상하에 미친다’라고 돼 있다. 제289조의 2 제1항에는 지하 또는 지상 공간의 상·하의 범위를 정해 구분지상권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각 대지는 용도 건폐율 용적률 등으로 개발 행위가 법으로 제한되어 있다. 경제 논리로만 치자면 비싼 땅에 건축물의 볼륨을 최대치로 키우는 것은 당연한 개인의 재산권 행사라 할 수 있다. 우리 도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기업의 사옥이나 문화시설 및 관공서 같은 공공시설 등에서 보행자 레벨, 즉 일정 지면부를 비워 건축물을 올리고 있다.

이런 열린 공간을 계획하는 것은 경제 논리에 반하는 것이다. 내 땅을 비워 보행자를 위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편익을 주고 브랜드 이미지는 물론 도시의 공간 환경이 향상된다는 유·무형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 4월 개관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대한 외래’이다. 선진의술로 백성을 구제한다는 인술제중(仁術濟衆)으로 국가중앙병원의 정신을 계승한 대한 외래는 지하 6층 규모로 주차장과 외래전용 진료공간을 두고 있다. 본관 암병원 어린이병원 치과병원을 연결하는 서울대병원의 허브로 병원 이용자의 편의성을 구축하고 다양한 편의시설과 함께 전시, 문화예술 공간이 지하에 조성돼 격조 높은 휴식 공간을 마련했다. 지상 공간은 병원을 찾는 내원객이 승하차하는 공공도로와 역사적 흔적을 보존한 공원을 조성해 치료가 아닌 치유의 공간으로 병원의 새로운 가치를 구현한 것이다.

종교시설에서 이런 가치가 반영된 계획을 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가 있다. 서울 사랑의교회는 건물의 외부와 내부에서 겉으로 드러난 종교적 색채를 최대한 배제하고 공연장, 졸업식장으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핵심 공간을 지하로 내려보내고 접근통로는 전체공간을 겔러리로 꾸며 누구나 제약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 문화시설을 구축하였다.

공공성과 문화가치 실현의 모범적 사례

▲ 사랑의교회 내부 시설뿐만 아니라 예배당 조차 각종 문화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은 사랑의교회 본당에서 열렸던 CCM밴드 플레닛쉐이커즈 공연모습(2018)

교회는 지상 대지 면적의 50%가 넘는 사유지 공간을 사람들이 24시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광장으로 길을 터놓음으로 자연스레 주민의 쉼터, 이동 통로를 형성했다. 지상으로 드러난 외부 건축은 건물의 중앙부를 과감히 도려내 하늘 경관을 열어 놓음으로써 주변 건물의 경관 시야를 배려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지역의 공적 사회기반 시설과 연계돼 더 큰 공간가치를 창출한다면, 종교를 떠난 물리적인 실체만을 두고도 그러한 종교 건축물은 공공적 가치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국가적으로도 적극 권장 할만한 모범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공적 문화가치를 해외 유수의 기관에서 인정한 것은 객관적 시각에서 그 가치를 평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지하도시 미래비전’이라는 전시가 돈의문 박물관 도시건축센터에 열렸다. 광화문 시청 동대문 서울역 남산공원 등 도심의 주요 지역의 지하 공간을 활용한 건축 프로젝트 제안이다. 각각의 제안을 보면, 지상과 지하를 자연스러우면서도 효율적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점과 지하 공간의 개발이 대상 지구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 속에서 마련돼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지하 공간들은 개별 주체들이 이익과 필요에 따라 공간을 개발하면서 각각의 공간들이 불연속적이고 단절되어 있어 효율적이고 원활한 도시의 흐름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지하 공간이 지상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과밀화된 지상을 보완하여 숨 쉴 공간을 확보하고 유기적으로 잘 연결된 지하로 인간의 활동영역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

과밀한 지상을 일정 부분 비워 놓아 다수가 함께 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지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도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지하 공간개발의 걸림돌이었던 안전과 환경적 문제 지하기반시설로 인해 많은 제약이 있었지만, 첨단 기술공법의 비약적인 발달로 지하 공간개발이 큰 난제가 아닌 지금, 안전한 시공과 환경문제, 지상과 연결된 시민 활동의 공공성 대응이 적절히 이루어진다면 항온, 항습, 내진, 격리성 등의 장점을 갖는 지하 공간의 활용은 과밀한 도시공간의 효율적, 입체적 이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

국토부 역시 그동안 엄격히 제한되었던 도로 상공과 하부 공간에 대한 활용을 문화·상업 시설을 포괄하는 다양한 범위로 확대하고, 민간의 혁신적 창의성 활용을 위해 사업개발 참여도 전향적으로 확대 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도 있다.

교회도 유기적 관점에서 공공재로 볼수있어

결국, 우리의 도시는 그것이 사유지이든 공공 영역이든 일정 부분 공공재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상, 지하의 내 땅만의 문제가 아닌 현대 도시의 유기적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제한된 영역이기 때문이다. 토지는 비록 공공이나 개인의 소유라 하더라도 현세대와 이후 여러 세대를 관통하는 삶의 터전인 소중한 역사적 자산인 것이다.

한·일 간 무역 분쟁이 치열한 지금 눈앞의 현실적 제도에 막혀 미리 대비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본다. 지하 공간도 거시적 미래 가치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미리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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