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성장률 2%선 붕괴가 가시화하고 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0.4% 성장에 그쳤다. 시장의 예상치 0.6%를 밑도는 ‘어닝 쇼크’다. 올해 연간 성장률이 2%가 되려면 4분기 성장률이 0.97%를 넘어서야 하지만 불확실한 대외여건 등을 감안할 때 실현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990년대 이후 연간 성장률이 2%를 밑돈 것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두 차례밖에 없다.

경기 부진의 원인으로는 우선 소비·투자 부진이 꼽힌다. 민간소비가 0.1% 증가에 그쳤고 건설투자는 5.2% 급감했다. 경기를 뒷받침해온 정부부문의 성장 기여도는 2분기 1.2%포인트에서 3분기 0.2%로 주저앉았다. 본예산과 추경예산으로 확보한 돈을 앞당겨 쓰다 보니 ‘실탄’이 거의 바닥났기 때문이다.

정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지출을 확대하면 재정적자가 늘고 국가채무가 불어날 수밖에 없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국가채무가 올해 735조원에서 2028년 1490조원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민간 투자를 늘리는 근본 방책에 눈을 감은 채 재정 지출에만 골몰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확장 예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했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집행을 독려했다. 그간 슈퍼 본예산에다 추경까지 편성했지만 경기가 바닥을 치는 현실을 보고도 아직 모르는가.

문 대통령은 최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기업 현장을 방문하는 경제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대통령이 경제 현장을 찾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이벤트성 행사로 흘러선 곤란하다. 민간부문의 활력을 높이는 실질 정책을 수립해 추진해야 수렁에 빠진 경제의 출구가 열릴 수 있다. 기업 투자와 고용을 일으켜야 부작용 없고 지속가능한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 이렇게 성장동력을 키우는 비책이 바로 규제개혁과 노동개혁이다. 문재인정부가 서둘러야 할 일은 재정지출 확대가 아니라 과감한 규제·노동 개혁이다.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소득주도성장 등 반기업 정책에 매달린다면 경제 회생은 백년하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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