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어제 담화를 통해 “북·미관계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형성된 친분관계의 덕분”이라며 “미국이 시간끌기를 하면서 올해 말을 넘겨보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망상”이라고 했다. 두 달여 남은 북·미 비핵화 협상 시한을 상기시키며 미국의 ‘셈법’ 전환을 요구한 것이다. 체제 안전보장과 대북제재 해제 방안을 들고 협상에 나오라는 압박이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이 24일 발표한 담화에서 “우리는 미국이 어떻게 이번 연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를 보고 싶다”고 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제시한 협상 시한인 연말이 지나기 전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자는 의중이 담겨 있다.

김 부위원장은 나아가 “영원한 적도, 영원한 벗도 없다는 외교적 명구가 영원한 적은 있어도 영원한 친구는 없다는 말로 바뀌지 않기를 바란다”고 엄포를 놓았다. 북한의 적반하장식 구태를 또 보게 된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논의가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건 북한 탓 아닌가. 지난 5일 스톡홀름 비핵화 실무협상의 결렬도 자신들이 원인 제공자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당시 미국은 진전된 양보안을 제시했지만 북한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면서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이러니 북한이 핵 보유국 의지를 꺾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북한의 잇단 대미 대화 제의는 지난 25일 남측에 금강산 관광시설 철거 문제를 문서교환 방식으로 논의하자는 통지문을 보낸 것과 대비된다. 전형적인 통미봉남 전술이다. 북한의 강경 입장은 남북경협에 진전이 없는 데 대한 불만의 표시일 것이다. 유엔 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는 불가능하다. 북한의 통미봉남은 한·미동맹의 틈을 벌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북한은 이런 전술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정부는 북한의 통미봉남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미동맹 관계를 굳건히 하면서 북·미 협상에 우리 입장이 반영되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북한은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이상 북·미 협상의 결실도, 남북경협의 진척도 기대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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