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엽 논설위원

‘국민정서법’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해괴한 이 법은 헌법 위에 군림하는 초법적 성격을 갖는데 정부 기구는 물론 ‘입법’이나 사법 기관 등에서 공론화 한 번 되지 않은 허상의 존재다. 그러나 위력은 과히 무소불위다. 이 괴물의 칼은 양날을 가지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을 죽이고 매장하는 위력이 있어 정치적으로는 대통령이나 고위공직자 가리지 않고 하루아침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끌어내리기도 하고 기업을 죽이고 살리기도 하는데 이제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군까지 이 고약한 정서법이 파고들어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법의 특성은 어떤 사람 또는 조직이 목적을 가지고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풀려 선악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언론과 연대하는 과정에서 국민정서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서는 진위를 떠나 성난 불길처럼 번지며 당사자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진실을 말하지만 역부족이다.

요즘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의 갑질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요지는 이렇다, 2년 전 박찬주 제2작전사령관과 그의 부인이 공관병에게 갑질과 가혹 행위를 했다는 내용으로 군 인권센터가 불을 지폈는데 문 대통령은 이 기회에 군 갑질 문화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했고 군 검찰에 의해 구속수감 되었다가 벌금으로 방면된 사건이다. 이것이 최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박 대장을 인재영입 명단에 올렸다가 도마 위에 오르자 원점으로 되돌렸다.

공관병은 왜 생겼는가?

공관병이 제도화된 과정과 이유에 대해 알 필요성을 제기한다. 6.25 동란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낸 것은 우리 국군이었다. 전시에 군은 적과의 접전지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가족과 격리된다. 이때 지휘관이 위치하는 곳은 경계와 식사 등 여러 일이 수반되는데 지휘관은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잡다한 일들은 공관병을 두어 처리토록 하였다. 이것이 제도로 자리 잡았고 오늘날 이 관행이 박 대장의 문제로 비화,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자 공관병 제도를 없애 버렸다.

누굴 두둔할 생각은 없다. 죄가 있으면 값을 치르는 것은 맞다. 그러나 생각해볼 것은 국방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을 본분으로 한다. 한데 인권을 빙자해 사실을 왜곡하고 지휘권을 흔들어 군 전투력을 약화,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안 된다.

건강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냉철하게 생각할 것은 여론에 편승 부화뇌동하기보다는 이 정서가 만들어지는 진원지와 자료를 수집 정리하는 인물의 성향, 목적의 선악을 포함해 여론화해 가는 과정의 합리성과 합법성을 주시하며 국가 이익 측면에서 해악을 따져야 한다.

하나 덧붙여, 지난 6월 훈련을 혹독하게 시키는 과정에서 병사들의 불만에 접근 현직 군단장을 보직 해임하는 국민청원을 올리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었다. 여기의 중심에도 군 인권센터가 있었다. 군의 존재 목적은 유사시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 군은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다. 혹독한 훈련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휘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인데 훈련에 지친 사병들의 심리와 정서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지휘관을 끌어 내리고자 하는 것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선택할 것은 여론편승이 아닌 변별력을 가지고 이를 여과해 내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치권에서도 여론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공론화 과정을 통해 이슈가 정리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의정치에서 국민의 여론은 중요하고 존중해야 하지만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로 국방에 틈을 벌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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