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민 기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5배나 오른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했다. 심지어 “한반도 바깥 미군 비용까지 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방위비는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 사항이며 해외에서 발생해서 우리 국회의 감사가 불가능한 항목까지 지급할 수는 없다”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이전부터 한미FTA와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미국에 불리한 상황을 개선하겠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한미FTA로 인해 미국이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거나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한국이 훨씬 더 분담해야 한다는 발언은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외친 트럼프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부동산 재벌답게 “한국에 미군 주둔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월세를 받는 일보다 쉽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미동맹에 있어 일련의 지각변동은 예견됐었다. 하지만 이렇게 5배나 오른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 못해 무례하다고 생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협상의 달인으로 추켜세우기도 하지만 상대의 약점을 공격해 기선을 제압하면서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전형적인 협상 방식을 동맹 관계에도 적용한다는 데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미국의 요구는 우리 정부가 초래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사드 배치 문제, 북한 비핵화 문제, 한일 군사정보공유 문제 등 외교·안보와 관련해 사사건건 미국과 이견을 보였고,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크게 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 여부에 따라 한미동맹이 좌우되고 있는 현 기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미동맹에는 아무 이상 없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정부는 강변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지급해야 할 미군 주둔비용은 대폭 인상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친북 단체 소속 대학생들이 주한 미국 대사 공관에 난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트럼프의 무리한 방위비 분담금 요구에 항의하는 시위였다. 철없는 학생들의 난동으로 지나치기엔 한미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는 데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만약 주미대사공관에 미국 대학생들이 한미FTA가 불공정하다면서 침입을 했다고 쳐보자. 우리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겠는가? 그런데도 구속된 학생들은 자신들이 안중근이나 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와 김정은을 연결하면서 중재자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중매 잘못 섰다고 뺨 맞는 격으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5배나 오른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받았다. 트럼프는 동맹국들 가운데 “한국이 최악”이라 했다는데 우리 정부는 아무런 해명이 없다. 보수언론처럼 좌파정권이 한미동맹을 그르쳤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아직 우리 정부는 트럼프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트럼프 스타일은 그의 대선 후보 시절부터 꾸준히 논란이 돼왔다. 특히 대한민국을 향한 그의 비호감은 우리의 외교·안보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것이란 예상이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정부가 트럼프 스타일에 끌려다니는 것은 우리의 외교역량이 전문가적 기지(機智)를 발휘하냐 못하냐 이전에 아마추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지 않냐는 지적이 나오는 부분이다.

현 정부에는 과거 운동권 시절 미제 축출을 외쳤던 이들이 상당수 자리를 잡고 있다. 이미 나이가 들어 현실에 발을 붙였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 시절 그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부분이 남아있는지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에 쏠려있는 관심을 1/10이라도 되돌렸으면 한다.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