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구 목사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선봉장이 되어, 모진 고난을 받고 목사로서 순교의 영광을 안았다. 사실 일제는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의식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인들의 혼을 빼 버렸다. 3•1운동 때 그토록 민족의 독립을 소리 높이 외쳤던 애국자들도 그 후 일본의 문화정책 술수에 모두 녹아나서 친일로 돌아섰고, 교회도 신사참배 강요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것이 국가가 교회를 탄압한 전형적 모델이다. 포용주의를 포용한 꼴이다.

오늘날도 차별금지법 등을 국가가 밀어 붙이려는 것과 같다. 이른바 총회지도자들마저도 묘한 논리를 합리화시켜, 1938년 장로회 총회는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고 국가의식이라고 성명을 내고, 경찰이 마련한 승용차를 나누어 타고 평양의 일본 신사에 가서 모두 참배를 했다. 참으로 하늘도 울고, 땅도 울 수 밖에 없는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그 후 한국교회는 없어지고,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이 되었고 예배 순서는 이랬다. 당시 주보를 보면,

①   국가봉창
②   궁성요배
③   대동아전쟁 필승기원 목도
④   황국신민의 맹세사재송
⑤   우미유가바 합창(천황찬양의 노래)
⑥   찬송가1장
⑦   사도신경
⑧   찬송
등등, 과거 한국교회는 여호와와 바알을 동시에 섬긴 우를 범했다.

그 후에 애국 헌금을 거두었는데 이 애국 헌금은 전투기<장로호>를 만들어 헌납했다. 실로 땅을 치고 통곡해도, 머리를 돌에다 찍어도 울분을 달랠 길 없었다. 과거 한국교회는 일제의 강압과 회유에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 하나님 앞과 세계교회 앞에서 믿음의 조상들 앞에 머리를 들 수 없다. 그래도 만주로 이주해 간 성도들은 한부선 선교사와 J. G. 보스 선교사의 지도로 500여 명이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신앙고백을 작성하고 서명한 것은 그나마 위안이 되었지만, 국내에서 되어진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선 목사를 필두로 주기철, 손양원, 손명복, 이인재, 한상동, 박관준 등이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결사항전 하다가 순교 또는 산 순교자가 되었던 것은 그나마 위로를 얻는다. 최근에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에 대해서, 모든 장로교단들이 마치 자기 들이 순교의 반열에 선 정통인 듯이 아전인수격으로 순교자 주기철 목사를 끌어다가 미화시키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장로교단 마다 주기철 목사 복권(復權)이란 행사도 있었으나, 죽은 분에 대한 복권은 카톨릭이 하는 짓이니 그것도 교리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1976년부터 주기철 목사의 순교와 그의 설교에 대해서 글을 썼었다. 또한 순교자들이 포함 된 설교를 모아서 <한국교회 설교사>란 책을 썼고, 이 책은 전 세계 10여개국으로 번역되었다. 이 일로 주기철 목사의 아들인 <주광조> 장로와 깊이 사귀었고, 주장로님이 총신 신대원에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 기념비를 세울 때를 대비해서 내게 비문을 써달라고 했다. 사실 그 전에 나는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 전까지 갖고 있던 가방과 안경과 안경집, 그리고 몇 장의 희귀한 사진 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과정은 이렇다.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하신 후 38선이 막히자, 산정현교회 집사였던 최천구 집사가 주기철 목사님의 유품을 가지고 월남하였다. 그 후 최천구 집사는 부산 고려신학교를 졸업하고 송도에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잘했다.

그런데 그 교회는 박윤선 목사님의 가족이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1962년에 내가 동산교회에서 박윤선 목사님을 모시고 전도사로 일할 때 최천구 목사님을 뵈었다. 그 후 최천구 목사가 은퇴하자 주기철 목사님의 유품은 해방 전 산정현교회 전도사였던 김정덕 목사님께 드렸다. 김정덕 목사님은 고신을 졸업하고 광화문교회를 담임했다. 그는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선봉장 이기선 목사님으로부터 성경을 배운 학자였다. 그는 대한신학교 겸임교수를 하다가, 1970년대 초에 미국 이민을 갔었다. 그 후 미국 L.A에서 <나성제2교회>를 개척 목회였다. 그러나 그는 미국 시민권을 딴 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 후 그 교회에 장로였다가 목사가 된 김종혁 목사가 그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김종혁 목사님은 철저한 칼빈주의자로서, 필자가 미주 총신 학장으로 있을 때 그는 이사장이었다.

1984년 나는 나성 제2교회에 부흥회에 초대되었는데, 김정덕 목사님의 사모와 대화 중에 주기철 목사님의 자료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사모님이 말하기를 그 자료는 모두 창고에 처박아 놓았다고 했다. 나는 눈에 번쩍 뜨였다. 그리고 사모님께 말씀 드리기를 <제가 창고 정리를 다 해드리겠습니다. 만에 하나 주기철 목사님의 자료가 있으면 한국으로 가져가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기꺼이 허락을 해주셨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가지고 다니시던 가죽 가방과 안경, 안경집, 수첩에 있던 사진들을 발견해서 한국에 가져왔다. 그 후 총신대 내 연구실에 두었던 낡아 빠진 주기철 목사님의 가방은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잘 몰라서 쓰레기인 줄 알고 내가 없는 사이에 불에 집어 넣었다. 그 사건은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그래서 주목사님의 안경, 안경집만이 한국칼빈주의연구원에 보관하다가, 몇 년 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역사박물관을 만들 때 기증했다. 대게 사람들은 역사적 문헌이나 자료에 대해서 무심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우직하게 나는 한국교회의 역사적 정통성을 지키고 칼빈주의 신앙과 신학을 지키는 일에 반세기를 매달렸다. 주기철 목사님의 비문도 내가 쓴 원고에만 있고, 20년이 지나도록 총신에 순교기념비 하나 없이 무심하게 지냈다. 여기에 그 때 총신 양지캠퍼스에 세우려던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비문을 싣는다.

태양신과 싸우려고 선봉에선 주기철님
한국교회 신앙절개 온몸으로 지키려고
일천팔백 팔십칠년 주장로의 네째아들
경상도땅 웅천에서 주뜻대로 나셨더라

개통학교 졸업하고 오산학교 입학해서
조만식과 남강선생 민족정기 이어받고
연희전문 수학중에 눈병으로 중퇴하나
김익두의 부흥회에 성령감동 체험하니

평양신학 개혁주의 말씀사람 기도사람
불과같은 열정으로 주의교회 일으키고
초량교회 문창교회 산정현의 어진목자
진리말씀 설교하며 온몸으로 불태우다

신사참배 반대운동 총사령관 되더니만
일사각오 순교자로 피를뿌려 승리하니
정통신앙 이어받은 총신동산 요람에다
돌하나로 기념해서 순교정신 이어가리

1990. 9. 11

한국순교자 기념사업회 고문
전 총신대학총장 정성구(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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