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기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12월 전망치는 90으로 이달보다 2.7포인트 또 하락했다. 55개월째 기준선 100을 밑돌고 있다. 올해 연평균 전망치는 90.8로, 11년 만에 가장 낮았다. 내수, 수출, 투자, 자금, 고용, 채산성 중 어느 것 하나 기준선을 넘은 지수가 없다. 기업의 생존 환경이 앞으로 더 혹독해진다는 의미다.

기업은 올 들어 시퍼렇게 멍들었다. CEO스코어가 대기업 241곳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올 들어 3분기까지 이자보상배율은 평균 5.08배였다. 지난해 10.01배의 절반 수준이다. 영업이익이 지난해 128조4145억원에서 76조3668억원으로 줄어든 결과다. 34곳은 번 돈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따른 고비용 부담에 세계경기 둔화까지 겹친 결과, 돈은 벌지 못하고 생존이 위협당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고용이나 임금이 증가할 리 만무하다. 소비자심리지수가 살아난다고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한국은행의 조사 결과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0.9로, 7개월 만에 기준선 100을 돌파했지만 이는 최근의 집값 상승에 따른 결과다. 지수를 구성하는 6개 세부지수 중 하나인 주택가격전망 CSI가 120으로 뛰면서 소비자심리지수도 덩달아 높아진 것이다.

기업이 활력을 잃은 곳에서는 성장 엔진도 멈출 수밖에 없다. 한경연은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이 1.9%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내년 세계 성장률 전망치 3.4%보다 무려 1.5%포인트나 낮은 수준이다. 이런 잿빛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기업 활력이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은 ‘고비용 굴레’에 갇혀 신음하는데 정부는 이를 수술할 생각은 않고 엉뚱한 정책만 쏟아내니 그렇다.

경제를 살리려면 근로시간 제한, 최저임금 인상, 친노동 규제 등으로 악화된 고비용 구조를 뜯어고치는 게 급선무다. 지금처럼 재정 방출에만 의존하면 성장 엔진은 꺼지고 자산가격의 거품만 커질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세금 살포로 경제가 나아지기를 바랄 수는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책기조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성장의 원동력인 기업은 더 깊은 침체 늪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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