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새해 예산안이 국회에서 졸속·깜깜이로 처리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 됐다.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12월2일)이 지나간 것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감액과 증액을 최종 조율할 ‘소소위’(3당 간사협의체) 구성을 놓고 갈등을 빚어 심사가 늦어졌다. 여야는 부랴부랴 소소위를 가동했으나 예결위 활동 시한을 넘겼다. 여야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놓고 격렬히 대치하다 보니 예산안 심사가 뒷전으로 밀려난 양상이다.

부실 심사 이상으로 우려되는 것은 소소위의 밀실 심의로 넘어간 예산이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법적 근거도 없는 소소위는 회의록도 없고 언론의 접근도 어렵다. 의원들이 민원성 예산 요구인 ‘쪽지’를 들이미는 창구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이 지역구 챙기기에 혈안이 된 상황에서 쪽지 예산은 기승을 부릴 것이다. 예산심사의 투명성을 높이려면 모든 논의를 공개하고 기록하는 국회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

내년도 예산안은 513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어느 때보다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지만 과거 행태에서 개선된 게 전혀 없다. 국회 상임위 예비심사에서만 증액 규모가 10조6000억원에 달했고, 감액은 약 5000억원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구 민원성으로 보이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증액이 2조원을 넘었다. 예산안 14조5000억원 감액을 공언한 야당 의원들도 상임위에서 앞다퉈 증액에 가세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민생·경제 법안 처리도 지지부진하다.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오늘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을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만 국회 행정안전위를 통과했을 뿐 나머지 두 법은 해당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해 본회의 처리가 불투명하다.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인 빅데이터 등을 활용하려면 데이터 3법이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는 산업계의 주장에 여야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도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지만 일각에서 수정안이 논의되는 등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국회 본회의에서 데이터 3법 등 핵심 민생·경제 법안을 차질 없이 처리해야 할 것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이처럼 ‘위법’을 일삼고 어찌 법치를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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