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상수지 흑자가 7년 만에 최악으로 주저앉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599억7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2012년 이후 가장 작은 흑자 폭이다. 미·중 무역 갈등에 따른 세계경기 둔화와 주력 품목인 반도체 경기 부진 등의 여파로 수출이 부진했던 탓이라고 한다.

내막을 뜯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경상수지 중에서 본원소득수지가 122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보였지만 환영할 일이 못 된다. 우리 기업이 해외에 설립한 현지법인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이 사상 최고를 기록한 덕분이기 때문이다. 해외로 나가는 기업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지난해 내국인의 해외투자는 355억3000만달러 불어난 반면 외국인의 국내투자 증가 폭은 105억7000만달러에 그쳤다. 외국으로 빠져나간 돈이 국내로 들어온 투자의 3.4배에 달한다. 외국인의 국내투자액은 문재인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170억달러, 2018년 144억8000만달러였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해외에 투자되지만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금은 급속히 줄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을 타개하려면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환경을 개선하는 게 급선무다. 정부는 어제 데이터·인공지능(AI), 미래차·모빌리티 등 10대 분야 규제혁신 세부추진방안을 확정했다. 신산업·신기술뿐 아니라 기존 산업의 애로 사항까지 수용해 투자 유치와 수출 확대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범정부적 추진을 위해 10대 분야 주무 부처 1급이 참여하는 ‘10대 규제개선 TF’도 내주 출범할 예정이다.

바람직한 방향이긴 하지만 기대를 거는 국민이 많지 않다. 그동안 규제개혁이 번번이 구호에 그친 까닭이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정부도 규제를 개혁하겠다고 소리쳤고 전임 박근혜정부는 규제를 ‘암 덩어리’, ‘손톱 밑 가시’로 부르며 개혁에 나섰지만 모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 영국의 붉은깃발법을 언급하면서 규제개혁을 주문했지만 오히려 새로운 규제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지난해 택시업계의 반발에 밀려 ‘타다’의 진입을 막더니 올 들어 여당의 을지로위원회가 배달 앱 시장 1위인 ‘배달의민족’의 인수합병(M&A)까지 제동을 거는 지경이다. 기업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풍토에선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은 요원하다. 지금은 백 마디 말보다 한 가지 실천이 중요하다.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