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이화 선생

1937년 8월 23일 경상북도 대구 비산정에서 주역 연구가인 야산(也山) 이달(李達)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을 중퇴하고 동아일보, 신동아 등을 거치며 역사연구에 전념하여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한길사) 등 다수의 저작과 슬하에 1남1녀를 남기고 2020년 3월 18일 84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경상북도 경주 월성에서 유아기를 보내고 5세인, 1942년 일가족과 함께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와서 살다가, 1945년 아버지와 함께 대둔산에 들어가 한학(漢學)을 공부했다. 16세가 되던 1951년에 학교를 다니려고 가출해서, 부산, 여수, 광주 등지에서 고학을 하여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천승세, 김주영, 이근배, 홍기삼 등과 동문수학했으나 생활고 때문에 학업를 마치지 못하고 중퇴했다.

21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병든 어머니를 돌보며 아이스케기 장사, 군밤 장사, 빈대약 장사, 보험 외판원, 술집 웨이터, 가정교사 등 20여 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어려운 청년 시절을 보냈다.

1967년 동아일보 출판부에 임시직으로 들어가 천관우 등을 만나고 신동아로 옮겨 신규식평전을 쓰고 창작과 비평에서 허균에 대한 글,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국사 내의 파벌에 대한 글을 연재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서울대 규장각, 한국정신문화원에서 일하며 고전번역을 담당하였고, 20대 후반부터 독학으로 한국사 연구의 길에 접어들어 49세에 임헌영,서중석,박원순 등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를 조직하여 소장에 봉직하고, 2004년부터 10년동안 22권의 한국사이야기를 완성하여 20여년동안 300쇄, 독자 50만명을 기록하였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서원대 석좌교수, 경술국치 100년 공동행동위원회 상임공동대표 등을 맡았다.2020년 3월 18일 김영희여사와 슬하에 1남1녀와 한국사이야기, 허균의 생각 등 다수의 저작을 남기고 84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1일 오전 10시. 02-2072-2010.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