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에 몰린 소상공인을 돕는 긴급 정책자금 대출을 두고 대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현장에는 ‘마스크 대란’ 때 같은 살풍경이 이어진다. 전국 62개 소상공인진흥공단 지역센터와 은행마다 신청자로 수백m 장사진을 이룬다. 대출 신청조차 하지 못해 발길을 돌리고, 신청해도 한 달씩 보증 승인을 기다린 뒤 실제 대출받기까지 또 하세월이다. 소상공인들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말해 준다. ‘매출 절벽’에 임대료·인건비는 꼬박꼬박 줘야 하니 천길 낭떠러지 위에 선 심정일 것이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가 전국 3464개 가맹점을 조사한 결과 97.3%가 매출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최저임금 인상에 멍든 소상공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 줄폐업 위기로 내몰리는 것이다.

정부는 소상공인·중소기업에 50조원 이상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출 신청·보증·실행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졌다. 기존 ‘소상공인 경영애로자금’ 현황만 봐도 실상을 알 수 있다. 이 자금 신청액은 지난 18일까지 11만6000여건, 6조2000억원이지만 지난 10일까지 집행된 자금은 1648억원에 불과하다. 이달 셋째 주 지역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서 발급 건수도 하루 평균 4347건에 그쳤다. 이런 식으로 자영업자만 560만명이 넘는 소상공인에게 어떻게 정책금융을 긴급 지원하겠다는 것인가. “파산 후 돈을 꿔주겠다는 거냐”는 불만이 쏟아지는 이유다.

까다로운 보증 심사가 주범으로 꼽힌다. ‘보증 결정을 잘못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 탓에 승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신용보증재단에 파견된 은행원들도 보증업무에 관여하지 않는 다. 세금체납·이자연체 등을 따져 지원 대상을 선정하므로 정작 어려운 소상공인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중소기업 상황도 하등 다를 바 없다.

한국은행은 어제 은행·증권사 등에 6월까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방식으로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기로 했다. 재원 부족으로 시장에 자금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풀어도 실수요자에게 가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금융지원이 ‘그림의 떡’이 되어선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림의 떡으로 변하고 있다. 말만 앞세워선 안 된다. 정부는 당장 수습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연쇄 파산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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