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구 박사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란 말이 있다. 민심 곧 백성들의 마음은 곧 하늘의 마음이란 말이겠다. 그런데 이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도 된다. 흔히 선거 전, 선거 후에 민심이 곧 천심이란 말을 자주 쓴다. 하지만 민심은 자연 발생적이라고 말하기 쉽지만 민심은 조작 되어 진다. 그리고 정치에는 민심조작을 하는 전문가가 따로 있다고 들었다. 그 방면의 전문가들은 언론을 통해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특히 요즘은 컴퓨터나 핸드폰을 통해서 이른바 댓글을 달아서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여론을 바꾸기도 한다고 들었다.

문제는 그 사람들의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들이 몰래 숨어서 여론 몰이를 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특히 중국과 북한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선동 선전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수단이고 방법이다. 특히 상대 정당을 파멸시키고 총선이나 대선에 승리하기 위해서 별별 짓을 다하고 있다. 선전 선동에 이긴 쪽은 거짓도 진실이 되고, 진실도 거짓으로 만들어 버린다. 흔히 하는 말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그럴듯한 프레임을 만들고 소설을 써서 사람들의 귀를 멀게 하고 눈을 가리기도 한다. 이전에 <김대업>이란자가 가짜 뉴스를 만들어 정권을 뒤집었던 예도 있었지만, 실제로 한국에는 전교조, 민노총 등 수 많은 반한국 단체들이 활동해서 역사를 바꾸고, 정권도 만들고, 여론도 조작해 왔다. 그리고 요즘은 무슨 일이든지 모두들 붉은 머리띠를 띠고 아주 과격한 행동으로 공권력을 무너뜨리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이 한국의 유행이다.

19세기의 유럽은 그들의 구호처럼 <주인도 없애고(no master)>, <하나님도 없애버리자(no God)>는 사상으로 공산주의가 일어나서 활개치게 되었다. 그런 구호들과 운동권들이 역사를 뒤집어 엎었다. 사회주의 자들은 모두 이 방면에 아주 잘 훈련된 전략가들이다. 이런 사상들이 자유대한 민국에 <선진화>, <평화>, <정의>, <통일>, <다 함께>라는 멋진 구호를 만들어 견인차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일반국민들은「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라는 말이 있듯이 당장 자기 일터에 수입에 지장이 없으면 그런 프레임에 모두 넘어간다. 그래서 이긴자들은 말하기를 “민심은 천심이다”라고 프레임을 깐다.

1847년 화란의 수상을 지냈던 흐룬 반 프린스터(Groen Van Prinstere)는 <불신앙과 혁명>(Ongeloof en Revolutie)이란 책을 썼다. 이 책은 공산당 선언(1948)이 나오기 전 1년 전에 나왔는데 핵심은 이렇다.「혁명은 하나님 없는 불신앙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불란서 혁명은 사실상 하나님이 없는 인본주의 사상이었다. 폭력으로 세상을 뒤집어 엎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상이다. 공산주의도 결국 불란서 혁명운동을 채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유럽의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직전에 러시아, 헝가리, 체코 등을 여행했고, 그곳에 우리 선교사들을 파송 했었다.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작이었음을 역사가 확실히 증명했음에도 우리 나라에서는 다 죽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불씨를 되살리려고 애쓰는 사람들과 단체들이 참으로 많은 듯 하다. 그분들은 나라의 큰 사건을 교묘히 이용해서 민심을 돌리는데 거의 천재적이었다. 그 이유는 1980년대에 권위주의 정권에 반대한 대학생들이 세작들에게 포섭되어, 이른바 민주화라는 멋진 프레임을 만들어 학습지도자를 따라서 모두 100여권 이상의 혁명이론을 학습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상을 깊이 학습한 사람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노동, 예술, 법조계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
그런데 커뮤니케이션 이론에는 <먼저 들어간 정보가 나중 들어간 정보를 지배한다>고 한다. 젊은 날에 읽었던 불온 서적들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가도 여간 고쳐지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신학자나 목회자들까지도 이런 사상을 가진 자들이 없지 않다. 물론 그때의 사상이 너무나 잘못된 줄 알고 전향하는 이들도 많았다.

민심은 천심인가?
신학에서도 비슷한 말이 있다. 즉 백성의 소리(Vox populi)와 하나님의 소리(Vox Dei)가 있다. 백성의 음성도 물론 귀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난 후에 백성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유일한 표준이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양심에 따라서 살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양심을 귀히 보지만, 인간의 양심도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한다. 모두들 양심적이라고 하지만 그 양심도 자기식대로의 부패된 양심이다. 성경은 말한다. 인간은 전적 타락했기에, 하나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 서만이 자기를 옳게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등불이요 빛이 되신다(시119:105). 결국 목사, 장로, 집사, 권사 모든 평신도들은 <하나님의 음성(Vox Dei)>을 먼저 들을 줄 아는 자를 의미한다. 특히 목회자가 깨어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 대중들의 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민주주의란 국민의 뜻이 절대적이라고 한다. 특히「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한(For), 국민에 의한(by), 국민의(of) 정부라야 한다」는 아브라함 링컨의 말은 옳다. 그러나 링컨은 그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했고, 하나님의 음성 곧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했다. 오늘 같은 시기에 우리는 <국민의 음성>(Vox populi)보다 <하나님의 음성>(Vox Dei)을 먼저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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