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의 최근 발표는 재산세와 건강보험료 등의 기준이 되는 부동산 공시가격 산정 작업이 얼마나 엉터리로 이뤄졌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감사원이 지난해 공시된 전국 단독주택과 토지의 공시가격을 조사했더니 개별공시지가가 개별주택가격보다 높은 주택이 22만8475호에 달했다. 전국 단독주택의 5.9%에서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개별공시지가가 개별주택가격보다 2배 이상 높은 곳이 2419호였고, 공시지가 산정에서 아예 빠진 곳이 43만여 필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가 찰 노릇이다.

개별공시지가에는 토지 가격만 포함되고, 개별주택가격은 토지·주택 가격을 합산해 산정한다. 주택 가격이 마이너스가 될 수 없는 만큼 개별주택가격이 개별공시지가보다 높아야 하는 게 상식이다. 이런 상식이 무너진 원인은 주먹구구식 탁상행정에 있다. 개별공시지가를 맡는 토지담당 부서와 개별주택가격을 맡는 세무담당 부서가 똑같은 토지를 놓고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들이 부서별로 칸막이를 쳐놓고 ‘불통 행정’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감사 결과는 지난해 2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제기한 공익감사 청구가 단초였다. 경실련의 요구가 없었다면 부당한 과세가 계속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담당 공무원과 한국감정원 등 관련 기관이 이런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면 명백한 직무유기다. 복지부동의 전형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동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불합리한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한 국민들만 바보가 된 골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말 조세 정의 차원에서 토지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향후 7년 내 70%에 이르도록 해마다 올리겠다고 밝혔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전국 평균 6%나 오른 것은 그 일환이다. 국민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과 정부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조치로 인해 갈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처지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로 수입이 줄어든 납세자들에게는 과중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과세정책을 국민이 받아들이려면 무엇보다 세금 산정이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를 외치기 전에 과세의 공정성부터 제고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공시가격 산정 근거 등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을 제도화해야 한다. 과세정책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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