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국제적인 인적·물적 교류의 제한이 심해지면서 글로벌 분업체제가 개편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전 세계를 무대로 광범위하게 연계된 글로벌 가치사슬에 기반을 둬 작은 부문만 생산하기에는 국가 간 이동에 따른 불확실성과 비용이 커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범위의 글로벌 가치사슬을 유지하는 것이 개별 국가의 경쟁력에 반드시 유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가 해체되고 국가 내부 단위의 생산체계로 개편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국제분업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자급자족 경제로의 지향은 비용증가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범위는 아니어도 여러 국가에 걸쳐 있는 지역적인 분업체계는 여전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러한 지역적 국제 생산 네트워크가 공존하되 이들 국제 생산 네트워크 간에 일종의 분화가 발생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즉, 부가가치가 높으면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국제 생산 네트워크와 비용에 기초해 가격경쟁에 의존하는 국제 생산 네트워크로 각각 분화되는 것이다.

제1·2차 세계대전 사이 전간기(戰間期)에도 세계화 후퇴와 자국중심주의 강화가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와 최근 상황의 차이는, 미국이 스스로 고립적인 입장이었던 당시와 달리 현재는 미국이 압도적인 위상을 바탕으로 자국 중심의 국제 생산 네트워크를 여전히 유지할 수 있고 심지어는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다. 실제로 코로나19 이전에도 진행되고 있었고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는 미국 중심의 경제체계에 강하게 연계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국제 생산 네트워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과학기술과 혁신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기업과 호혜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 정도의 자체 역량을 우리 기업이 갖추지 못한 상태라면 미국이 자신의 경제 네트워크에 우리를 편입시킬 이유가 많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추진되고 있는 한국판 뉴딜이 단순한 재정지원 사업에 그쳐서는 곤란하고 기업의 혁신 역량을 실제로 제고할 디지털 전환 및 산업구조 개편과 결합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규제환경 개선이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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