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버의 달

새한일보 신춘문예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홍성주 작가l승인2020.06.03l수정2020.06.0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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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주 작가

붉은 달이다. 고속도로 한가운데 유난히 커다란 달이 동그랗게 떠 있다. 달은 곧 산 위에 걸터앉았는가 싶더니 어디론가 숨었다. 사라진 듯싶었는데 정면에서 나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다. 돌연 길 뒤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매우 가까이에서 흐르듯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갈색과 붉은색이 섞인 화사한 달빛이 눈길을 끈다. 오늘은 예전에 무심코 보던 달이 아니다. 달빛이 크고 밝다는 것 외에도 여러 빛깔을 함께 보여 주고 있다.

11월 붉은빛이 도는 달을 ‘비버의 달’이라고 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털갈이를 하는 비버의 털색을 닮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평상시 비버의 털은 윤기 나는 갈색 계열 빛깔이다. ‘야생의 목수’라고 불리는 비버는 두 개의 귀여운 앞니가 인상적이다. 예쁘고 앙증맞은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달을 바라본다. 검은색 하늘 위에 주홍색 색종이로 오려 붙인 듯 커다랗고 둥근 달 안에는 무수한 전설과 사연들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넙적 꼬리를 끌면서 달아나는 비버처럼, 달빛을 비추며 움직이는 달그림자가 서로 닮은 모습이다.

달이 붉게 보이는 것은 달에 도달하는 빛이 지구대기를 거치는 상황일 때 붉은색 계열이 주로 달에 닿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구에서 관측하는 슈퍼문은 평상시 지구와 달사이가 가장 멀 때보다 몇 만Km나 가까운 거리에 놓인다. 지금 보이는 달은 슈퍼문보다는 멀리 있다. 그럼에도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이처럼 크게 보이는 것은 ‘달 착시현상’ 때문이다. 주변 지형 등 인식의 차이와 대기의 상태에 따라 우리 눈의 렌즈효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때로는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 생각과 같다고 미루어 짐작하여 상대방을 대할 때가 있다. 보이는 것만을 믿어버림으로 겪는 혼란스러움이다. 그로 인해 타인이 내 마음과 같지 않음을 알았을 때 실망감을 느낀다. 달이 착시현상을 일으키듯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달은 착시현상이라 할지라도 붉으면 붉게, 푸른빛이면 푸르게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명확하게 볼 수가 없다. 숫자로도, 가늠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은 무엇으로 이해하고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일까. 가까이 있어도 알 수 없는, 멀리 있어도 알 수 있는 마음을 얼마만큼의 거리에 세워 두고 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달을 바라보듯 사람의 마음도 눈에 보이는 빛깔로 받아들여 이해한다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오해는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달은 멀리 있어 숫자로 기록되는 거리를 가늠하기 어렵다하더라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때가 있다. 수없이 고심하고도 난감한 오해의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가까이 있어도 서로에게 먼 거리감을 느낀다. 사람과 사람사이 마음의 거리는 헤아릴 수 없을 때가 많다. 달과 지구의 거리를 말하듯 명확하게 수치로 계산하여 마음을 말 할 수 있다면 사람들과의 관계는 좀 더 투명하게 맺어 질 수 있을까. 가족이나 연인사이에 마주 앉아도 말없이 휴대폰만 바라보는 모습을 자주 접한다. 몸은 함께 있으나 마음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평소 서로에게 무심한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우연한 기회에 남편의 직장 동료로부터 남편이 직장에서 상처를 경험했던 일을 전해 들었다. 남편은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남편의 상황을 타인에게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나는 오랫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늘 자신의 일이 최우선이었던 남편은 어쩌면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얼마쯤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남편은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나에게 이야기를 하면 내 마음만 더욱 상할 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고 한다.

눈빛과 목소리만으로 서로의 생각을 헤아릴 수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야 생각해보니 항상 눈빛만으로 서로를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기쁘다고, 즐겁다고 말하는 소통이 필요한 것 같다. 서로에게 관심을 표현함으로 달보다도 멀리 느껴졌던 우리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너무 가까워서 또는 익숙해서 놓쳐버리고 있던 서로의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소홀했던 시간을 함께 나누는 여유를 남겨 두어야할 것 같다.

집에 도착 할 즈음 비버의 달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평소에 보던 달처럼 달빛은 하얗게 보이고 예전처럼 평범한 달이 되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먼 길을 달려오며 바라보던 오렌지 빛 붉은 달은 어느새 숨어 버렸다. 지금의 하얀 달과 비버의 달이 같은 것임을 알아도 아쉬움은 밀려온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겠다는 아름다운 생각을 갖는다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슈퍼문보다 가깝고 비버의 달보다 고운 달이 뜨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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