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에 다시 전운이 감돈다.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이 지난 1일 강제동원 가해 기업인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에 대해 자산압류 결정문 공시송달 결정을 내렸다. 일본 외무성이 압류 관련 서류를 받고도 해당 기업에 전달하지 않음에 따라 내려진 이 결정은 8월4일까지 찾아가지 않으면 서류가 송달됐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법원이 사실상 일본제철의 국내 자산을 강제매각하는 절차에 돌입한 것이다. 한·일관계가 작년 11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결정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은 즉각 보복조치를 예고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일본기업의 경제활동을 보호한다는 관점에서도 모든 선택지를 놓고 의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도 그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전화통화에서 “(일본기업 자산) 현금화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므로 피해야 한다”고 했다. 보복조치로는 한국 측 자산 압류와 한국산 제품 관세인상, 금융제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자산 현금화까지 두 달 이상의 시간이 있는 만큼 양국 정부는 파국을 막기 위한 대화와 협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일본은 먼저 명분도 실익도 없는 대한국 수출규제부터 철회하는 게 옳다. 일본 언론에서도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경제가 충격을 받는 상황에서 수출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에 경제보복 조치를 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갈등의 진원지인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푸는 게 최우선 과제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지난해 12월 그 해법으로 한·일 기업과 국민의 기부금으로 재단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1+1+α’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안은 양국 정부와 정치권에서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피해자들과 시민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안을 보완해 합리적 해법을 찾기 바란다. 일본도 한·일 청구권협정을 통해 배상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과 배치되지 않는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미국·중국 간 갈등이 전방위로 확산하는 상황에서 한·일관계까지 틀어져서는 양국 모두 살길 찾기가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일이 역지사지의 지혜를 발휘해야 코로나19 경제 충격과 신냉전의 거센 파도를 넘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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