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노역으로 악명 높은 하시마(일명 군함도) 탄광 등의 진실을 왜곡한 근대산업시설 전시관을 어제 일반에 공개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군함도 등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본인의 의사에 반(反)하는 조선인 강제노역’을 인정하며 희생자를 기리는 내용이 포함된 정보센터를 설립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외교부는 주한일본대사를 초치해 강력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약속을 어기는 일본의 행태는 어이가 없다. 가뜩이나 꼬인 한·일 관계를 더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도쿄도 신주쿠구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 전시물은 메이지 시대 산업화의 성과를 과시하는 내용으로 점철돼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에 사과하거나 피해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기는커녕 관련 내용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다. 당시 조선인이 받은 월급봉투와 한·일 청구권협정 전문을 전시해 ‘가혹한 조건하에서의 강제노역’을 부정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심지어 “조선인을 차별하거나 학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귀여움을 받았다”는 증언을 버젓이 소개했다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오죽하면 일본 교도통신마저 “과거의 사실을 덮고 역사 수정주의를 조장한다”고 비판했겠는가.

2001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독일 에센의 촐페어라인 탄광 산업단지에는 “강제노역은 독일 최대 제조업 공장 안에서 특히 잔인하게 이뤄졌다. 루르 공업단지에서는 6000명 이상의 유대인이 살해됐다”고 쓰여 있다. 독일의 이런 솔직한 고백 덕에 이 시설은 등재 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잘못된 과거라 하더라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주변국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마땅히 일본이 보고 배워야 할 내용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한·일 청구권협정 위반이라며 “한국이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해왔다. 그럼에도 정작 유네스코에서 국제사회를 향해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역사적 진실 앞에서 책임감은 실종된 채 유불리의 주판알만 튕기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과거사만 나오면 지우고 감추려 드는 일본의 몰염치한 태도로는 국제사회의 존중을 받을 수 없다. 일본은 약속한 대로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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