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어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했다. 2018년 9월 4·27 판문점선언에 따라 남북 상설 대화창구로 설치됐던 연락사무소가 21개월 만에 사라졌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이날 남북합의에 따라 비무장화한 지대에 다시 진출해 전선을 요새화하고, 대남 전단을 살포하는 등의 군사행동을 예고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13일 담화에서 밝힌 내용이 하나씩 현실화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남북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할 사업을 찾자”고 유화 메시지를 냈지만 북한은 외려 대남 압박수위를 높이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연락사무소는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협의·소통 채널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문재인정부가 남북관계에서 거둔 큰 성과로 자부하는 것이고, 건설비 등 180억원가량을 우리 측이 부담했다. 북한이 그런 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철거한 건 합의 위반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총참모부가 언급한 ‘비무장화된 지대’는 개성과 금강산 일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 일대에도 남측 관광객이 이용하던 통로에 군부대를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이뤄졌던 감시초소(GP) 시범철수 조치를 철회할 소지도 있다. 북한이 남북합의 무력화에 나서면서 남북 평화와 협력을 상징하던 개성과 금강산이 군사적 대결의 장소로 후퇴할 것으로 우려된다.

청와대는 어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를 긴급 소집해 “(연락사무소 폭파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북측이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경우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엄중한 사안임에도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NSC 전체회의가 아닌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주재하는 상임위 회의로 진행된 건 이해하기 어렵다.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에서는 정부와 여당 인사의 안이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났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연락사무소 폭파와 관련해 “일단 예고된 부분이 있다”고 밝혀 야당의 빈축을 샀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영길 위원장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그런 것 같다. (대)포로 폭파 안 한 게 어디냐”고 했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발언이다. 북한이 대남 전단 살포로 맞불을 놓겠다는 방침을 밝힌 당일 서호 통일부 차관이 인천 강화군 석모도를 찾아 대북전단 살포 현장 대응태세를 점검한 것도 납득할 수 없다. ‘북한 달래기’ 등 대증요법으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북한에 굴욕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국가안보가 위태해지고 남북관계도 망치게 될 수 있음을 직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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