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이 논설고문

박원순 서울시장이 4년간이나 성추행을 당했다는 비서 출신 여성으로부터 경찰에 고소된 다음날 끔찍하게도 숙정문 근처 산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대 영안실에 시신을 안치하고 분향소를 차려 서울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 시민들을 위해 마련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분향소를 만들어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조문하였다. 시장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다음날 공교롭게도 6.25 전쟁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100세를 향유하고 별세하여 육군장으로 현대아산병원에 빈소를 차려 각계의 조문과 애도가 잇따르고 있다.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 당시 병력 8천으로 북한군 2만여 명의 총공세를 막아내며 전세를 뒤집은 기적 같은 전투를 이끈 주인공이다. ‘6.25의 살아있는 전설’ ‘구국영웅’ ‘한미동맹의 상징’ 등 백 장군 앞에 붙는 수식어로도 그의 업적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은 그가 없이는 존재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누리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은 그의 덕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호국의 원로께서 정부에서 받는 사후의 대접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국립 현충원에 당연히 모셔야함에도 장지는 대전현충원으로 결정이 되고 대통령의 조문도 받지 못했다. 좌파 집권세력은 백 장군이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복무한 기록만 부각시켜 끊임없이 그를 매도하고 그의 혁혁한 공적은 짓밟았다. 일제 치하에서 출생하여 나라도 없는 일본의 식민지상태에서 일본군에 갔다고 하여 ’독립군 토벌 친일파‘로 몰아붙인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국민을 대표하는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육군장으로 치러지는 백 장군 빈소에 조문도 하지 않았다. 국민장으로 국립현충원에 안장하자는 국민들의 청원을 거절한 정부의 처사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신 전대협) 등 시민단체가 광화문 이순신 동상 옆에 시민분향소천막을 6동 규모로 설치하였다. 이 분향소에 장맛비에도 불구하고 밤늦게까지 찾아 백 장군의 마지막 길을 함께한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자발적으로 찾아와 분향한 숫자가 2만 명에 가까웠다고 하니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은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시청 앞에 박원순 시장 분향소 앞에서는 도를 넘는 ‘2차 가해’와 ‘망자 조롱’이라는 반사회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친여진영에서는 박 시장을 성추행혐의로 고소한 여인을 향해 ‘여성이 벼슬이냐’ 라고 비난하고, 고인을 동물에 빗대며 바나나 퍼포먼스를 벌이며 정치적 반대진영을 향한 극단적인 감정의 표출을 드러내어 피해자나 고인에 대한 예의는 실종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박시장 빈소가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가장파괴 꽃뱀 범죄 반드시 척결하자’는 현수막을 펼치다가 저지당했다는 소식이다. 대한민국은 품격을 중시하는 예의지국이다. 최소한 죽음 앞에서는 갈등과 정쟁을 중단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고인을 향한 분향을 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병원 박원순 시장 빈소를 찾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기자의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 계획 질문을 받다가 버럭 화를 내며 ’호로자식‘이라고 욕을 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방송에 나왔다. 대한민국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 된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 질문은 국민을 대표하여 기자가 질문한 것이며, 기자로서 당연한 것이다. 이해찬 대표는 여당 대표로서 국민들에게 오만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며, 정부 여당은 정정당당하게 시장의 사인 등 국민이 알아야 할 권리를 짓밟아서는 안 되겠다.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