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에 따른 장례 절차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후폭풍이 거세다. 정치적 공방으로 번지면서 박 시장을 고소한 전직 비서에 대한 ‘2차 가해’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일부 친여 성향 지지자들 사이에선 “이번 미투는 ‘작전’이다” “배후세력이 있다”며 피해자 신상털기를 독려하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한 게시판엔 “밤새 서울시 회의록 다 뒤졌다” “2017년 비서진을 찾아내 참교육을 시켜 주겠다”는 섬뜩한 경고까지 올라왔다. 심지어 “난중일기에서 관노와 잠자리에 들었다는 구절 때문에 이순신이 존경받지 말아야 할 인물인가”라는 댓글까지 달렸다고 한다. 말문이 막힌다. 고소인과 상관없는 여성 사진이 욕설과 함께 올라온다. 심각한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실정이다.

이번 의혹의 본질은 고위공직자의 왜곡된 성 인식에 있다. 무엇보다 박 시장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여성의 보이지 않는 상처가 더 심각하다”고 누차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의 상실감은 크다. 사회운동가·정치인으로서 그가 이룬 업적은 인정해야 하지만, 공무상 사망이 아닌 박 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는 데 대한 반대 의견도 많다. 서울특별시장에 반대하는 국민청원 참여 인원이 50만명을 넘은 건 짚고 넘어갈 일이다. 인과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단기간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서명에 참여한 것은 그만큼 고위공직자의 성도덕에 대한 시민의 잣대가 엄격해졌음을 뜻한다.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해서 피해 당사자의 아픔이 그대로 묻혀서는 안 된다. 여권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또다시 오명을 뒤집어쓴 꼴이다. 박 시장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을 정치 공방으로 비화시킨 장본인도 성추행 의혹엔 입을 닫고 그의 업적만 내세운 여권이다.

여권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도덕성과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해야 한다. 박 시장을 미화하는 데 열중하기보다는 일정부분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자 신상을 들춰내는 등의 2차 가해를 뿌리뽑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여권 내에서 “고소인에 대한 무분별한 신상털기와 미확인 사실 유포가 잇따르고 있다”며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경찰도 ‘공소권 없음’ 결정을 핑계로 '미투 의혹'의 진상을 덮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 신변도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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