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수 논설위원

유난히 긴 장맛비에 붉게 핀 능소화 꽃잎이 툭 하고 떨어져 있었다. 봄인가 싶었던 계절은 어느덧 여름을 지나 칠월도 막바지에 와있다. 문득 비 그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까만 어둠 사이로 죄인에게 가하는 징벌의 법 조항이 별빛처럼 나열되어 죄목을 하나하나 열거해가며 죄를 묻는 시간이다. 우리가 언제 이토록 심한 질병으로 애를 먹었던 기억이라도 있었던가? 금방 끝나지도 않을 역병으로 고통받는 독자들을 위해 문학인이랍시고 무얼 했던가?에 대한 반성으로 불면의 밤이 길어질 것만 같다.

코로나19의 장기사태로 국민들의 심신이 불안정해져가고 있고 사람들의 마음이 우울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시국에 문학인이할 수 있는 것은 좋은 글과 좋은 책을 통한 문학치료[文學 治療, bibliotherapy]효과를 여러 독자들에게 공급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문학 작품으로는 활자로 인쇄된 글만이 아니라 영화나 영상자료, 노래 가사 그리고 일기체로 쓴 가벼운 글 등이 전부 해당된다. 문학치료의 대상으로는 심신불안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나 지금처럼 코로나19에 의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 정상적 사회활동과 거리를 두고 동떨어진 삶으로 이웃이나 주변과 갈등을 가지고 사는 사람 모두가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대상들을 통해 문학인들은 각자의 글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와 환경에 있는 불특정 대상들과 교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코로나 시대가 생각보다 길어지는 과정에 알게 모르게 와있을 고립된 독자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문학의 힘으로 극복해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참 문학인의 바른 생각인지도 모른다. 삶에 있어 소중한 것 중 하나가 문학이라면 우리는 오늘도 우리를 지켜보는 독자와 함께 동행해주는 바람과 손잡고, 시를 쓰고 별빛의 몸짓을 바라보며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야할 준비를 해야 한다. 문학은 비움이고 내려놓음이다. 비 그치고 어둠이 주변으로 깔려있다. 어둠이 주는 약간의 긴장감도 좋고, 한 줄의 시를 쓰는데 필요한 몰입감을 가져오기도 좋은 시간, 오랜만에 떠오를 달을 기다리며 필자는 독자들에게 전할 원고, 문학으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치료제를 써내려간다. 시는, 수필은, 그리고 문학은 모든 사람들을 반성하게하고 성찰하게 하는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살아내는 일은 죄를 만들어가는 행위와 더불어 나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아픔도 키워가는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으로 반성이라는 글자를 까만 밤하늘에 써보았다. 뜨거워야할 여름밤이 오히려 차갑게 느껴지는 것에는 문학치료에 대한 내 부족함이 만들어내는 사색의 결과에 대한 당연함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좋은 글이 있다면 독자가 읽고 그 어떤 부분에서든 치료 받을 수 있는 결과물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저녁 바람이 아파트 화단을 빼곡하게 채운 푸른 잎을 흔들고 지나간다. 작가 스스로 좋은 글이라고 쓴 원고지만 읽는 독자가 그저 흔해빠진 글이라고 치부해버린다면 어느 누가 또 용기를 내어 문학치료의 길을 나서겠는가 싶어지겠지만 독자들의 아픈 마음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지금 현재 문학을 하는 길에 머물러 있는 우리 말고는 그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잎을 스쳐가는 바람도 여름밤을 이어가는 별빛 못지않게 유월 밤바람보다 먼저였던 봄볕이 소중한 때가 있었음을 필자는 안다.

삶을 잘 살아감에 있어 특히나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생각은 짧고 강하지만 명료한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고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좋은 창작물을 만들어 공급해가는 일일 것이다. 늘 모자람이 많다고 스스로 자책하는 문학인들이지만 각자의 생각이나 이념 속에 우리가 지닌 글쟁이로서의 처음 그 생각도 그렇게 간결하고 굳은 마음이었으리라. 여태껏 가진 것 없었지만 배고픔에도 흔들림 없이 독자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영혼을 치유해주리라는 다짐이 없었다면 문학인의 존재도 없었을 것은 분명하다. 끝없는 창작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문학 치료의 길, 이제 우리 스스로 열어갔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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