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상해 부총장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➀비난’을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 ‘➁비평’을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함, ㉡남의 잘못을 드러내어 이러쿵저러쿵 좋지 아니하게 말하여 퍼뜨림’, ‘➂비판’을 ‘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리어 판단하거나 밝힘’, ‘➃비방’을 ‘남을 비웃고 헐뜯어서 말함’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사전적 의미를 고려할 때 ‘비난, 비평㉡, 비방’은 나쁘게 말함을, ‘비평㉠, 비판’은 냉철한 행위(옳고 그름을 가림)를 전제하여 평가함을 나타낸다.

요즘 신문이나 페복, SNS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왜?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다른 종교에서는 종교 지도자(성직자)들이 같은 종교 지도자(성직자)에 대해서는 비난, 비평, 비판, 비방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독교 지도자는 왜 같은 종교 지도자를 신랄하고 모질게 비난하고 기소(검사)해서 재판하고 판결(판사)해서 사형(교도관)시키고 화장해서 인골을 뿌리는 말을 할까?

개인적으로 서울구치소 교정협의회 회장과 서울교정청 협의회, 교정협의회 중앙회, 국군교도소 교정협의회 부회장으로 16년째 봉사하며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스님과 원불교 교무 등 주변에 오랫동안 많은 종교 지도자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같은 종파에 종교 지도자인 성직자를 비난하는 모습을 거의 듣거나 보지 못했다.( 좋은 벗 조계종 OO주지스님도 있고,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전무직종)

범법자들은 특정 종교를 떠나 모든 종교지도자가 범죄자로 뉴스와 신문 등에 소개된다. (나는 16년째 교도소에서 사형수와 무기수 장기수 및 일반 수용자 인성교육과 상담을 하고 있다) 그러나 유별나게 꼭 한 두명도 아니고 수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만 같은 동업자(성직자)를 비난하는 일에 앞장선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더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동업자인 기독교 지도자를 비난하기 경쟁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신학교 교수로 지낸 석학 어른 노 신학자도 앞장서서 비난 글을 올리고 있다.

이런 기독교 지도자들에 동업자 비난을 보는 일반 성도들과 비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비난하는 기독교 지도자(성직자)를 어떻게 평가할까?

가끔 두렵기도 하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작은 호롱불의 역할이라도 하고 있는지 성찰하게 되는 시간이다.

나는 평화주의자다. 그래서 외부에 글을 쓸 때 정치적 의견이나 견해는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후배가 페북에 기독교 지도자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보고 전화를 해서 자네는 같은 기독교 성직자(목사) 아닌가? 이글을 당신 교인이 보면 같은 성직자인(목사)를 뭐라고 말할 것 같은가? 라고 물은 적이 있다.

기독교 성직자(목사)가 되려면 학부4년, 신대원3년, 그리고 교단과 노회에서 2~3년 훈련을 받아야 안수를 받을 수 있다.

평신도나 비기독교인이나 타 종교에서 비난하면 어쩔 수 없지만, 꼭 같은 동업자인 기독교 지도자들이 경쟁하듯 동업자를 심판하고 정죄하는 모습은 그리 아름다운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아주 오래전 ○○신문사에서 ‘○○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이식비리 논란에 시리즈로 기사를 쓴 기자에게 전화해서 일반 신문기자는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지만 기독교 신문사에서 시리즈로 꼭 기독교 고발 기사를 기고하는 것에 대해 기자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신이 쓴 기독교 단체 비리 기사를 보면 성도들과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 기관과 교회를 어떻게 생각할까?

정의로운 일이지만 기자가 쓴 글로 기독교 비판의 글을 읽고 수 만 명이 하나님을 떠나거나 믿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교회에 돌을 던질 수 있다.

한국교회에 아름다운 봉사와 섬김으로 천국을 만들어 가는 수 많은 기사들이 차고 넘치는데 왜 기독교 신문사가 일반 신문사 보다 앞장서서 비난하는지..,

간곡하게 비난과 비평, 비판은 일반 신문사에 맡기고 기독교 신문사는 복음, 굿 뉴스를 전하는 일에 앞장서 주길 바란다고 부탁 전화를 한 일이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동업자인(기독교 지도자)를 페북과 SNS에 비난과 비평, 비판 글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예수님은 마태복음 7:1에서 심판하지 말라는 하신다. 남을 심판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신다.

내가 잘했다고 해서 남의 잘못을 비난하면 나는 죄인이 된다.

심판하는 것은 이웃을 무너뜨리기 위해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기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지 말고....,

기독교 지도자들이 글을 쓸 때 글을 보는 모든 사람이 기분이 좋아지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고 교회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목사님을 성직자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감동을 주는 굿 뉴스를 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한민국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이 쓴 글을 읽으면 모든 사람이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은혜롭고 행복한 감동을 주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나는 “꽃보다 아름다운 말”의 책을 집필한 저자이다. 11쇄가 판매된 책이다.

말과 글의 무게와 가치 영향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꽃보다 아름다운 말” (저자: 변상해: 한국청소년보호재단출판)책의 일부이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말로 만족을 얻고 평안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 좋은 차를 타고 비싼 아파트에 살고 높은 지위와 명예로부터 얻는 기쁨보다 공동체 안에서의 사람들의 말로 인해 얻는 기쁨이 더 큰 기쁨이다.

말은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할 수도 있고 병든 마음을 치유할 수도 있다.

약 3:9-10에 보면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리라"고 한다. 잠 18:20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고 한다.

한 입으로 파멸과 고통, 마음을 병들게 하는 죽음의 언어를 내놓고 또 그 입으로 찬송도 하고 저주도 하고 욕도 하고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우리에게 합당하지 않는 삶이다.

아름답고 좋은 말도 많은데 굳이 나쁜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상처를 치유하는 언어, 살리는 언어, 힘을 주는 언어, 용기를 주는 생명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살리는 언어생활을 하려면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서구사회는 기독교 중심의 사회로 이웃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언어를 중요하게 생각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교문화 중심의 사회인데다 외침과 억압을 많이 받아서 자연스럽게 폐쇄적 언어, 죽음의 언어가 되어 버렸다.

우리 민족은 수천 년 동안 수없는 외침을 많이 받았다. 양반과 권문세가와 가진 자들의 억압과 착취를 당해 왔으며 일제 식민통치와 6.25전쟁, 군사 독재정치 등을 겪어 왔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가슴엔 분노와 절망감과 한이 서려 있다.

그러다 보니 언어가 거칠어졌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욕도 많고 직설법의 거친 말이 많다. 대한민국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경상도와 세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대통령을 배출한 전라도에 가도 우리 사회에서 양반 동네라고 말하는 충청도에 가도, 제주도, 경기도, 강원도 어디를 가도 심한 욕설과 무시무시한 생명을 죽게 하는 언어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쓰이고 있다.

그 한 예로 육시~랄(죽은 사람에게 참형을 할 만함), 병신 육갑할 놈(병신이 육십갑자를 안다/얕잡아 본다), 염병할 놈(전염병 걸리는 사람), 병신같은 놈(장애인이 될 사람)이란 말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요즘엔 중고등학생들이 파괴된 언어를 일상용어로 쓰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 언어문화의 심각성을 생각하게 된다.

잠18:7에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고 한다. 잠13:2에서는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을 누리거니와"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말이 자기 인생의 행복을 부르기도 하고 불행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말을 입으로 내보낼 것인가 생각해 보고 말을 해야 한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고통과 절망을 만드는 죽음의 언어만 내뱉는 사람이 되지 말자.

병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본인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이웃까지도 불행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온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만드는 행복의 언어를 내놓아야 한다.

세상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사람은 생명의 메시지를 내놓는 사람이다.

“혀는 뼈가 없지만, 뼈를 부숴버릴 수 있다.” - 위클리프

“성공한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라.” - 아인슈타인

너는 하얀색

나는 빨간색

색이 달라도

너는

나는

친구

너와 나는 아름다운 꽃이야!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서울동노회 (통합) 세계선교부 서기

-고양시교육자 선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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