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집값 통계를 입맛대로 골라 해석하는 고질병이 도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8·4 대책 이후 나름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서초구 반포자이, 송파구 리센츠 등 주요 아파트 실거래가가 내린 사례를 소개했다. 그런데 다주택자·법인이 급매물을 내놓은 데 따른 이례적 가격하락 사례만 선별했다고 한다. 앞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대책 효과가 8월부터 작동하고 있다”고 했고,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집값이 안정화 추세로 가고 있다”고 했다.

현실은 딴판이다. 서울 집값 상승세는 꺾이지 않고 서민 주거난은 날로 심화하고 있다. 7월 말 ‘임대차 3법’ 중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가 시행된 후 전세 매물이 사라지고 강남 3구 아파트 전셋값은 한 달 새 1억∼2억원 이상 오른 곳이 수두룩하다. 전셋값 상승세가 서울 외곽과 경기도로 옮겨가는 ‘풍선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집값은 전월 대비 1.5%나 뛰었고 정부 공인 한국감정원 자료에서도 0.42% 올랐다. 정부가 부동산시장의 실상을 무시한 채 “시장이 안정되고 있다”고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정부는 내년 7월부터 경기도 하남 교산지구 등 3기 신도시와 과천지구, 서울 용산 정비창 부지 등 수도권 주요 공공택지에서 아파트 6만 가구에 대한 사전청약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올 상반기 시장을 교란한 3040세대의 패닉바잉(공황 매수) 현상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주변 시세보다 30% 싸고 중형급 물량공급도 최대 50%에 달해 과열 진정에 도움이 될 듯하다. 하지만 이 정도 물량으로는 서울 집값을 잡기에 역부족이다. 최종 입주까지 5년 안팎이 걸려 전세시장 불안을 증폭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수도권 공공택지 분양 예정 주택 84만5000가구 중 44%인 37만 가구를 내후년까지 공급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8·4 대책의 핵심인 서울 도심의 공공 재개발과 재건축은 지지부진하다. 빡빡한 기부채납과 분양가 상한제 등 각종 규제 탓에 재건축조합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집값 안정을 기약하기 힘들다. 특혜 시비와 조합의 이익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게 필요하다. 꼬일 대로 꼬인 부동산문제를 풀려면 시장원리에 따르는 게 옳다. 재건축·재개발 관련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민간 주도의 주택 공급을 늘리고 주거 취약층 지원에도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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