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동 논설위원

필자가 사는 아파트는 연령대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다. 오래 살다 보니 원(原) 입주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를 와서 산다. 지하철역이 바로 담장 하나 사이에 있고 시내외 교통이 편리하다. 대형마켓이 무려 다섯 군데나 반경 2km 이내에 있고 학군도 좋다.

그래서 요즘 학생을 자녀로 둔 젊은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아 젊은 학부모들이 많이 이사 와서 산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입주민들이나 입주민 자녀들이 반갑게 서로 인사와 대화를 나누며 친숙하게 지냈다.

어느 때부터인지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그들과는 인사도 서로 나누지 않고 대화도 없다. 그러니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면 분위기가 매우 어색하다. 이사 온 이웃 대부분은 젊은이들 부부가 많고 학생들도 눈에 많이 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들을 만나면 인사를 하기는커녕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기만 한다. 참 어색하다. 먼저 말을 걸기도 그렇고 아무 말도 안 하자니 불편하다. 그런데 강의하러 상경하는 날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처음 본 젊은 주부가 "안녕하세요?" 하면서 밝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어린 아들한테 "얘야 어른을 뵈면 인사를 드려야지. 안녕하세요?"라고. "어서 인사를 드려라." 하니까 그 어린 아들이 힘찬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라고 큰소리로 인사를 하면서 넙죽 절까지 하였다. 필자도 기분 좋은 마음으로 반갑게 "응 그래. 아주 똑똑하게 생겼구나. 건강하게 잘 크려무나." 하고 어깨를 쓰다듬으며 칭찬과 격려를 해 주었다.

엄마에게도 "아주 훌륭한 어머니"라는 덕담을 해주면서 엘리베이터를 나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상경길에 올랐다. 열차 내에서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가 희망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직도 어른을 공경하고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젊은 세대들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안도감이 들었다.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 보면 열차 안에서 시끄럽게 큰 소리로 떠들거나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다른 승객들에게 폐를 끼치는 어린이들을 볼 수가 있다. 이럴 때 그런 자녀들에게 제지나 꾸지람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귀엽고 대견하게만 생각하는 일부 젊은 부모들을 가끔 볼 수가 있다.

이 세상에서 제 자식 안 이쁘고 안 귀엽고 안 대견스러워하는 부모는 없다. 다만 때와 장소에 따라서 이뻐하고 귀여워하는 것이다. 제 집에서 제 자식이 무슨 짓을 하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다중이 있는 공공장소에서는 그런 자식들에게 하지 못하도록 제지하거나 꾸지람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유튜브에서 본 지하철 안에서의 장면이다. 한 젊은이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에게 삿대질하며 큰소리로 욕설을 퍼붓고 대들며 노인에게 윽박지르는 장면을 보았다. 설사 노인이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나이가 어린 젊은이가 큰소리로 공포감을 조성하며 노인에게 대드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씁쓸하였다.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의 명성이 사라지는 듯한 몹시도 부끄러운 장면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젊은 부모들에게는 다중(多衆)을 위한 공중도덕심이나 상대방에 대한 예의(禮儀)와 배려심(配慮心)이 거의 없다. 지하철에서 보듯이 일 부 젊은이들은 부끄럼이나 수치감도 없다. 뻔뻔함 그 자체다. 동방예의지국의 겸손함과 미풍양속이 차츰 사라지는 슬픈 세태(世態)를 보는 듯하여 깊은 우려감이 앞서고 우울하다.

그런 속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훌륭한 젊은 엄마와의 만남은 더없는 기쁨이자 즐거움이요 흐뭇함이었다. 내일을 향한 한가득 밝은 희망의 등불을 보았다. 웃어른을 공경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공공장소에서의 예의와 양보 등 동방예의지국으로서의 명성을 잃지 않으려는 사회적 노력이 들불처럼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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