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식 논설위원

국민의 행복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가 자살률이라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네팔이나 방글라데시같이 1인당 국민소득이 매우 낮은 나라 국민의 행복지수가 고소득인 나라의 국민 못지않게 높다고 하니 결국 행복지수는 꼭 경제적 소득으로만 측정할 수는 없는 듯하다. 사람은 정신적, 경제적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데 자살률이 높은 나라를 행복한 나라라고는 말할 수가 없겠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빠른 경제성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살률은 세계 1위이다. OECD 국가의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 평균이 11.2명인데 우리나라는 2018년 기준 26.6명이고. 2017년의 24.3명에 비해 더욱 증가한 추세다. 참고로 일본은 14.9명, 미국 14.5명, 영국 7.3명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노인빈곤율은 압도적 1위, 노인 자살률은 압도적 세계 1위라고 하니 선진국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2018년 경찰청 분석에 의하면 자살 원인 1위는 정신과적인 문제 31.6%, 경제문제 25.7%, 질병 18.4%, 가정문제 7.9% 순이다. 직장동료와 선배 중 우울증 등으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을 봐왔기에 질환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노년층의 자살은 생활고와 질병이 주된 자살의 주요 요인이고 30~50대는 경제문제가 가장 큰 요인이다. 일전에 탈북자 모자가 굶어 죽은 채로 발견되어 충격을 준 일도 있었고, 사업실패나 경제난으로 일가족이 자살하는 예는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자살률이 장기간 세계 1위를 지속하는데도 국민적 관심은 매우 미흡하다. 교통사고 등은 윤창호 법과 민식이 법 등을 제정하여 사고 방지를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자살 예방에는 정책적 노력이 부족한듯하다.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한국교통안전공단을 1981년에 설치했지만,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이보다 한참 뒤인 2011년에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설치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기관들의 인력과 예산도 현격히 차이가 난다. 예산과 인력에 있어서도 자살예방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노력이 있으나 아직까지는 미흡해 보인다.

특히, 정신적 질환을 앓는 사람들을 위해 상담시설인 정신건강복지센터가 각 시와 구마다 설치되어 있고 환자를 위한 전문 입원시설이 충분히 있음에도 환자 자의가 아니면 입원하기가 매우 힘들고 그것도 환자가 원하면 바로 즉시 퇴원시켜야 한다. 인권의 발현으로 인해 함부로 입원시킬 수가 없고 또, 타인에게 직접적 위해를 가하는 경우를 정신건강복지센터 요원과 경찰이 출동해서 직접 맞닥뜨리고 위험 수준이 높다고 판단해야 상황에 따라 입원시킬 수 있다. 얼마 전 경남 거창에서 아무 일면식이 없는 여성을 따라가 폭행을 하여 피해 여성이 중상을 당하였고, 서울역에서는 길 가는 여성을 폭행하여 광대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힌 30대 피의자가 체포된 경우가 있다. 이러한 묻지마 폭행은 우발적인 원인도 있고, 사회 불만의 원인이 있기도 하지만 조현병 등의 정신과인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것도 많은 경우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법치국가이다. 흉악범들에 대하여 과거에는 사형을 구형하고 집행한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무기로 감형되거나 사형을 집행치 않고 보류하여 우리나라는 현재 실질적 사형제도 폐지국가로 분류되어 있다. 타인, 또는 타인의 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패륜적 살인범에게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권이 우선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의 시류가 그렇다.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의 처리는 사후약방문이고,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인권은 어찌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사형 선고를 받은 범죄자를 집행하지 않고 그냥 놔두거나 무기징역으로 감형하여 인권 국가입네 하고 세상에 보여주는 것만이 진정한 인권국가가 아니듯 '자살'을 '살자'로 바꾸도록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선거 때 표를 받기 위한 연령층을 목표로 삼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도울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경제활동이 더 어려운 장애인이나 수입이 없는 노인계층을 비롯한 취약계층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하고 자신의 잘못이 있으면 피할 것이 아니라 용서를 빌고 처벌을 받는 것 또한 국가와 국가를 이끄는 위정자들이 국민 앞에서 행해야 할 덕목이다.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견디기 힘든 여러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계속 일어날까? 오죽하면 스스로 죽음까지 생각할까? 사회에서 내몰린 그분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유명을 달리한 분의 남겨진 부모, 형제, 자녀들은 평생동안 그 아픔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함은 정신적 고통이 뼈를 찌를진대 이를 이해할 사람은 얼마가 될지,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기관은 얼마나 되는지, 나 또한 직장동료 수 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례가 있는지라 평상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위로하지 못했던 지난날이 너무 아쉬운데, 남아있는 사람을 위한 상담기관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스스로 목숨을 버릴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힘들었으며 그 죽음을 막지 못한 남아있는 사람의 자책과 미안함은 얼마나 지나야 해결이 될는지......

10년전 생을 마감한 선배는 어린아이 두 명과 형수님을 남기고 먼저 떠났다. 평상시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그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부서에서 일을 하다 보니 계속 힘들다고 부서 이동을 원하였음에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우울증을 앓던 선배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장례식장에서 울던 어린아이들의 눈물을 보면서 더불어 사는 세상, 조금만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가슴에 남는다. 후배 한 명은 자신의 능력을 넘치는 지나친 업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케이스이다. 여자 친구와의 결혼을 앞두고 가정을 이룰 꿈에 부풀어있던 친구였는데 지방 발령이 난 후 무엇이 그리 힘들었던지... 사람의 능력은 모두 높낮이가 있다. 적성에 맞는 업무만 골라 할 수는 없지만,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더라면 젊은 사람이 목숨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이다. 개인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 경제적 문제 또 그 밖의 이유로 인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의 제도적 장치나 경제적 지원이 더욱 절실한 시점에 와있다. 상담센터의 절대적 확충이 필요하고, 정신과 의료비 부담 경감 등 본인의 문제라 할지라도 아직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또한, 가족과 친구, 동료 등 집단의 관심이 절실하다. 그 사람이 힘들과 외로울 때 누군가의 위로와 조언이 필요했을지도 모르는 그에게 따뜻한 한마디가 있었더라면 삶의 희망을 다시 불어넣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남아있는 가족들의 삶을 위해서라도 위로하고 보듬고 용기를 주는 진정한 사랑이 가득한 복지 국가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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