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이 북측 해역에서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뒤 시신이 불태워진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국방부는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며 북한의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북한 총격으로 우리 민간인이 사망한 건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이후 처음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21일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 해역에서 실종된 이 공무원은 이튿날 북한 해상에서 발견됐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 단속정이 22일 상부 지시로 실종자에게 사격을 가한 것으로 보이며, 방독면에 방화복을 입은 군인이 시신에 접근해 불태운 정황이 포착됐다”고 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과잉대응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까지 불태운 건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야만적 행위다. 더욱이 총격을 가한 곳은 적대행위가 금지된 해상 완충구역이어서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봐야 한다. 철저한 진상조사가 우선이지만 북한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을 해야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건 정부 대응이다. 군 당국은 22일 공무원 사망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튿날까지 입 다물고 있다가 어제서야 관련 정황을 브리핑했다.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한 문재인 대통령의 그제 유엔총회 연설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공무원 월북과 우발적 사고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아이가 둘 있는 40대 가장이 월북할 동기를 찾기 어렵다. 이번 사건이 남북군사합의 위반인지를 두고도 입장이 오락가락했다. 북한 눈치 보느라 사건 실상을 은폐하려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청와대는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회의 결과를 보고받고 “충격적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북한 당국이 책임 있는 답변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도 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군통수권자가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종전선언이나 남북협력에 매달린다면 이런 일이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짝사랑’으론 남북관계 개선은커녕 국민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이 비록 사과했만, 이번 사건으로 남북관계 개선은 사실상 물건너갔음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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