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수 논설위원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허영을 뒤집어쓰고 사는 것일까? 아무리 진지하고 진실 된 모습일지라도 세상 밖으로 드러내어서는 되지 않는 두려움이란 것이 있기 때문일까? 부와 명예, 권력 따위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그 어떤 이유로 근거도 없이 자기 자신을 포장하고 꾸미며 사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에는 필자 스스로도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더 밝은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핑계로 억지에 의한 빛을 만들어 그림자 밑으로 몸을 숨겨 자신을 방어하고 제 식구 감싸기에만 혈안인 이 나라 일부 정치인들의 치졸한 모습에서 국민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되는 시절이다. 솔직함과 그렇지 않음을 떠나 최소한 눈치는 보지 않고 정치 인생을 살아갈 줄 알았던 사람도 권력의 맛을 느끼고 나면 확 변하는 모습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실망감은 어떤 말로 표현해야할지 모를 지경이다.

모를 것 같지만 국민들은 다 안다. 국민의 눈높이를 아직도 그들만 모르고 살아가는 현실에 오히려 그들의 정치인생을 초라하게 여기는 국민이 많음은 왜일까? 비겁함이다. 그리고 당선 전과 당선 후가 너무 다른 가면 속 얼굴에 환멸을 느끼는 것이다. 오늘도 허무와 허영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가졌던 꿈과 희망이 숨어들어가고 있음을 알았던 순간, 구름 한 조각이 상현달을 가리고 있다. 슬픈 가을의 시작, 더불어 슬픈 명절의 시작이다.

열린 생각들은 밤하늘 별빛처럼 내일 당장 만날 수도 있는 것, 서로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정치가 아니라 넓은 생각으로 다양하게 귀 기울이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주는 정치를 국민은 기다린다. 까만 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칠흑의 어둠이 덮어주는 아픔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지금의 시국은 김정은의 친서 하나면 다 용서될만한 가벼운 문제를 지닌 시국도 아니다. 사람의 목숨에는 여야가 따로 있어서도 안 된다. 여는 여대로 야는 야대로 자기들의 입장에서만 입을 열고 국민의 궁금증은 안중에나 있는지 묻고 싶다.

아픔을 그냥 묻어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영원히 잊게 하려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투명하게 밝힐 것은 밝혀야한다, 자국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군대임에도 군대의 사후 발표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은 비단 필자뿐이겠는가. 진영의 논리에서 맹목적 제 식구 감싸기는 국민이 식상해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국민에게 신뢰를 잃어가는 행동임을 분명 알아야한다.

추석 대목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립고 보고 싶었던 마음, 함께할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마는 이번 명절은 코로나로 인해 최악의 명절을 예상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니라 생각이 하나 된 나라에서 ‘다 함께 잘 사는 우리를 꿈꾸는 시간’은 먼 이야기가 아니라 매일 엘리베이트에서 만나는 이웃처럼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 생각하기 나름이고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있다. 지금 우리가 꾸는 꿈이 가능할까에 대한 생각에 힘들여 고민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진영의 논리를 떠나 국민을 바라보면 답이 나온다고 생각된다.

코로나로 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다. 그러니 이제, 이번 추석 대 명절을 맞아 여야가 협심하여 제발 국민의 눈높이에, 국민의 삶에, 코로나 시국에 살아남기 위한 방안부터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코로나 시국에도 변함없는 것은 정치만 그대로라는 소리가 남의 일이 아니다. ‘정치인이 존경 받는 세상, 국민만을 바라보는 정치인이 많아졌다’라는 소식이 들리는 나라의 국민으로 살고 싶어 하는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기를 우리는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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