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동 논설위원

인간은 의사소통의 도구로 문자를 발명하였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급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문자발명 이전을 선사(先史)시대라 하고 문자발명 이후의 시대를 역사(歷史)시대라고 한다.

문자는 음성언어와는 다른 특성을 갖고있다. 음성언어는 별다른 준비물이 없어도 소통하기에는 더없이 간편하고 신속히 이루어지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음성언어는 저장되지 않고 보관되지 않으며 바로 소멸되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문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매개 도구로 발명되어 기록할 수 있는 기록성과 내용을 보존할 수 있는 보존적 장점이 있다. 기록에 의하여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정확한 의미전달적 장점도 갖고 있다. 아울러 기존의 기록에 의미와 내용을 덧붙이고 수정하여 확대할 수 있는 의미적 확장성도 갖고 있다.

문자는 발명된 이후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역할을 해왔다. 문자는 각 국가별로 특징을 갖고 발전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예술의 나라답게 아름다운 글씨체 개발에 집중한 나머지 '이탤릭체'라는 고유한 형태의 이탈리아형의 문자를 고안하였다.

예전의 일본은 고무가 없는, 즉 지우개가 없는 나라여서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러다 보니 지우개가 없는 무수정(無修正) 전통의 글씨체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자는 음성언어와는 다르게 여러가지 긍정적인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인류문화가 전파되고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따라서 나라도 문자와 같이 흥망성쇠(興亡盛衰)를 함께 해왔다. 인간이 문자를 발명한 이래로 문자는 인간생활에서 문명창조를 견인하고 문화를 창달하는 매개도구로 크게 기능하였다.

특히 한 국가가 융성 발전하기 위하여는 하드파워(Hard-Power), 즉 전략 무기 등 수준 높은 군사력과 소프트 파워(Soft-Power), 즉 문화예술 분야의 높은 수준의 파워가 동시에 갖춰줘야 가능하다. 그 가운데 소프트 파워를 발전시키는 데는 문자의 보유 여부가 필수조건으로 갖춰줘야 한다.

세계를 지배했던 거대 제국들은 일찌기 자기들만의 문자를 발명하거나 차용(借用)하여 사용함으로써 고도(高度)의 문화를 창조하여 보존하고 전승하면서 세계를 제패하고 나름대로의 질서를 유지하였다. 고대(古代) 중국은 황허강을 중심으로 한 황허문명을 갑골문자를 통하여 발전시킴으로써 고대 중국의 역사와 문명을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집트문명은 파피루스를 통한 고대 이집트의 고유 상형문자를 통하여 이집트문명을 발전시켰다. 중동아시아의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문명과 인도의 인더스 문명,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명도 그들 고유의 문자를 통하여 그들의 문명을 발전시켰다. 유럽의 로마제국도, 해가 지지 않는 영국도 그들 나름의 문자를 통하여 고유문화를 창출하고 번영을 구가하였다.

현재는 미국이 세계를 제패함으로써 영어의 알파벳 문자가 세계를 풍미하면서 세계적으로 공용문자화 하고 만국 공통의 문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 국가가 흥하면 문자도 따라서 흥하고 망하면 문자도 따라서 자연스럽게 소멸하였다.

만주국의 멸망으로 만주문자와 언어까지도 소멸하는 비운을 맞고있다. 마추픽추가 스페인에 멸망하고 티베트도 중국에 합병되면서 고유의 티베트 문자가 사멸될 위기에 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제국의 강점 식민시대에 일본문자 전용(專用)과 창씨개명(創氏改名)까지 하는 등 자칫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인 한글이 사라질 뻔한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다.

현재는 세계 패권국가인 미국의 영향으로 영어가 세계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대접을 받으면서 영어 문자의 위세가 당당하고 위상도 세계 최고를 점하고 있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문자도 그 국가의 운명에 따라 생성소멸(生成消滅)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한글이 우리나라의 국력이 증대되고 K-Pop과 드라마와 영화 등 한류문화가 융성발전하면서 세계의 문화를 선도(先導)하는 위치에 이르자,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문자인 한글에 관심을 갖고 앞다투어 배우려는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문자가 없는 동티모르에 한글을 전수하여 동티모르인들에게 한글 문자를 갖게 해 준 것도 한글문자의 글로벌화 사업의 성공한 사례로써 한국인으로서 큰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문자는 국력의 상징이자 바로미터이다. 10월9일 한글날에 즈음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한글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갈고 다듬어서 우리나라의 국력신장(伸張)과 문화예술 발전에 유용한 도구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글의 세계화에도 관심을 갖고 정부가 거시적이고 글로벌화한 정책을 수립하여 보다 적극적이고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