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식 논설위원

2020년 10월 9일 사육신 공원 의절사에서 제564주년 추모제향이 열렸다. 코로나 19로 극소수만 참가하였고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지만 해마다 이렇게 사육신을 추모한다는 것은 의미가 대단히 크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사육신은 조선 단종 때 관료이자 세조에게 맞서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성삼문, 유응부,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등 6인이며 사육신 공원에 이들의 묘소 및 가묘가 있다. 사육신은 원래 세종의 신임을 받던 학자 들로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이 1453년 계유정난을 통해 단종의 동생인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1455년 단종의 왕위를 빼앗아 왕위에 오르자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 죽임을 당한 분들로 사육신을 포함 70여명이 체포되어 대부분 자결을 하거나 주동자가 처형을 당하였다.

사육신 중 박팽년과 유성원을 제외한 4명은 불에 달군 쇠로 맨살을 지지는 작형을 받았고, 사육신 모두 현재의 서울 시청 부근에서 사람을 눕혀 놓고 머리, 두 팔, 두 다리에 밧줄을 매고마차나 말에 연결시킨 후 일제히 말을 달리게 하여 사람을 여섯 토막으로 찢어 죽이는 거열형을 당했다고 한다. 이들의 시신은 3일 동안 효수되었는데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이 새벽을 틈타 시신을 수습하였고 한강 너머 노량진에 이들의 묘를 만들었다고 하며, 그렇게 사육신묘와 사육신 공원이 노량진 인근의 노들에 조성이 된 것이다. 

사육신 공원의 담벼락에 민주화 운동의 선구자 고 함석헌 선생의 글귀 있다 

“사육신이 죽지 않았던 들 우리가 의를 알았겠는가. 고난 뒤에는 배울 것이 있다.” 

공원길을 따라 홍살문, 불이문 안으로 들어서면 여섯 충신의 위패가 모셔져있고 좌측에는 정조가 내린 신도비각, 우측에는 1955에 만든 육각비가 세워져 있다. 충의 공간 사육신 공원은 근린공원으로 1년 365일 개장하는데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곳에 총 7개의 위패가 있다. 이는후에 김문기의 가묘가 추가되어 총 7명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기존에 알려졌던 사육신 이외에 충의공 김문기가 포함된 이유가 궁금했다. 기존의 사육신은 생육신의 한명인 남효온의 육신전 기록에 따랐는데, 그후 다양한 역사기록에 의해 김문기의 역할이 매우 컸음이 알려졌고, 국사편찬위원회는 공식적으로 사육신과 동일하게 김문기를 인정하기도 하였다. 노량진 사육신묘에 있는 김문기의 묘는 허묘이다. 충북 옥천 이원면 백지리 충의사에서 김문기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매 년 추모제를 지내 그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누구나 역사 유적지에 가면 유적지의 주인공과 그 시대를 상상하게 된다. 사육신 묘에 가면 자연스럽게 조선시대 세조와 단종을 떠올리게 된다. 수양대군으로 알려진 세조는 조선왕조 7대 왕으로써 부친 세종의 업적을 계승한 치적도 많고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무리 하고 왕권강화를 통해 국가를 안정시킨 업적이 크다. 그러나 그런 업적을 이루었더라도 그가 왕위를 옳지않은 방법으로 찬탈할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는다. 결국 결과를 위해서 옳지 않은 수단을 써되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단종은 너무 어린 나이에 왕좌에서 쫓겨나고 아무런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신하들의 묘와 관련 장소, 충의정신은 후세에 영원히 기억되며 보존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역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이 오늘날의 사회에서 당연하게 통용되고 있다. 결국 과정이 잘못되었을지라도 결과가 좋다면, 커다란 이익을 얻는다면 그 과정이 불공정해도 괜찮고, 저지른 잘못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어지며, 해도 괜찮은 잘못 쯤으로 치부되는 생각을 단호히 반대한다. 물론 결과도중요하겠지만 그 과정이 온전하지 않다면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떳떳할 수 없다. 바로 세종의 왕위 찬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가치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역사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커다란 교훈을 주고 때로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진짜 과정은 정의롭고 결과는 공정한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위정자들 뿐만 아니라 국민 하나하나가 자신의 삶 속에서 사육신의 충성어린 죽음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최근의 대한민국 사회에 꼭 맞는 속담인 듯, 입으로만 국민, 나라를 외칠 것이 아니라  청렴한 나라, 공정한 사회는 국가 지도층부터 솔선수범해야하며  내 편, 네 편이 아니라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할 수 있어야하고 틀린 것이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 그것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진정한 충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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