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있다. 이 말이 실제인지 의심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이 일반적인 성도의 모습이다. 하지만 베데스다교회 박남선 목사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이란 신앙을 몸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이 그의 인생을 어떻게 인도하셨고, 어떤 믿음으로 단련하셨는지 들어 보았다.

▲ 박남선 목사

박남선 목사는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거상(巨商)이어서 쌀을 화차(火車)에 실어 함경북도 성진까지 운반을 하곤 했다. 부모님과 함께 함경북도 성진에 머물던 그는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는데 6.25가 일어나 3년간 피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때 왕복 60리 길을 장작을 메고 다니면서 팔아 쌀 한 됫박으로 연명을 했다는 박 목사. 그는 어려웠던 피난 시절이 지나고 초등학교로 돌아갔으나 세 살이나 어린 동생들과 한 반이 되면서 많이 싸워 성격이 포악해졌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주먹세계에 들어서다

이후 기계체조를 해서 몸을 단련한 박 목사는 충남 천안에 있던 조일환 씨를 알게 된다. 씨름선수였던 조일환은 당시 17세의 나이에 주먹으로 충청도를 평정한 인물. 박 목사는 그와 함께 서울에 올라와 여러 곳에서 승승장구하지만, 종로에 자리 잡고 있던 김두한에게 막혀 그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서울에서 시작된 생활은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3년간 강원도 원주에 피신해있던 그는 결국 입대를 하게 된다.

박 목사는 군대에서의 생활도 순탄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군대에서는 사병들에게 돌아갈 쌀과 의복 등 군납품을 빼돌리던 시기. 박 목사는 “그 당시 식판을 포함해 급식이 750 그램이 돼야 하는데 500 그램이 채 되지 않았다. 한 사람으로 치면 얼마 안 되지만 군 전체로 보면 어마어마한 양”이라고 떠올렸다. 화가 난 박 목사가 아무리 소원 수리를 해도 시정은 되지 않고 영창에 끌려가 고생만 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제대한 그는 다시 주먹들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려 조일환과 연락을 끊는다.

▲ 백영훈 박사와 함께

어지럼병으로 하나님 만나

하나님은 한 사람을 주의 종으로 만들려면 예상치 못했던 일을 일으키시기도 한다. 박남선 목사가 어지럼병에 들린 때는 결혼을 하고 아내가 교회에 나가자고 전도하던 시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지럼병은 두 시간에 한 번씩 박 목사를 쓰러뜨렸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산리 기도원을 찾게 한다. 당시 신경안정제를 먹고 하루하루 버텼던 그는 “기도원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기도원에 가는 사람이 무슨 신경안정제를 가지고 가느냐?’라고 말했다. 이젠 아내마저 나를 버리려고 한다는 마음이 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약을 놓고 갔다”고 회상했다.

오산리 기도원에서 뜨겁게 하나님을 만난 그는 신학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때가 1985년 45살이다. 늦깎이 신학생이 된 박 목사는 방배동 영광교회 최광재 목사 후원으로 신학 공부를 시작하는데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아내가 오토바이에 치여서 척추를 다치게 된 것. 설상가상으로 수술을 하면서 의료사고가 발생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학 공부에 회의가 들기도 하련만 박 목사는 불만을 품지 않았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의료사고를 낸 병원에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 아내와 함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아내가 다리를 못 쓰게 된 지 33년이 지나도록 그는 일일이 병시중을 하면서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 박 목사는 오히려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체험한다고 고백한다. 당시 후배들이 병원에 찾아가 보상을 받으려고 몰려가려는 걸 말렸다는 그. 박 목사는 후배들에게 “내가 신학을 공부하고 있고, 목사가 되려는데 이러면 안 된다. 내 아들이 의사가 될지도 모르는데 이러면 어떻게 하냐?”고 설득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불평불만이 있을 수 없다”고 박 목사는 말한다.

이후 조일환과 연락이 닿은 박남선 목사는 서울에 올라와 애국애족봉사회을 만들어 장애인,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일에 앞장섰다. 지난 온 세월이 험난했기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돕는데 앞장서는 그는 남은 생애를 기도원과 수양관을 지어 사회적 약자를 돌보겠다고 한다. 박 목사는 “모세는 80세에 부름을 받아 120세까지 목회를 했다”며 “지금 내 나이 80세이지만 아직 한참은 일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 전 합참의장 김종환 육군대장(왼쪽에서 두번째)과 후배 동료들

비록 어려서 다른 길로 들어섰던 그였지만 늦깎이 신학생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제는 장애인,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을 돌보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박 목사를 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성경말씀이 떠올랐다. 박남선 목사가 모세처럼 하나님의 지팡이로 쓰임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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