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화상으로 열린 정상회의 및 협정 조인식에 참석해 서명했다. RCEP는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는 FTA다. 참가국의 인구·무역·국내총생산(GDP·명목) 규모는 전 세계의 약 30%를 차지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유럽연합(EU)을 능가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경제영토가 크게 넓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관세장벽을 허물고 수출시장을 더욱 확장하는 계기가 될 만하다. 정부의 신남방 정책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따져 봐야 할 점도 많다. RCEP는 애초 미국이 주도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맞서 중국 주도로 추진된 협정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TPP 탈퇴 선언으로 다자간 협정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봉합되는 듯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미국은 조만간 TPP에 복귀할 것이라고 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보다 높은 수준의 TPP를 추진하고 한국의 참여를 요청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중 갈등은 격화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다자간 협정을 둘러싸고도 균형점을 찾아야 할 처지가 됐다. 경제외교 역량을 발휘해야 할 때다.

경제영토 확장이 반드시 이익이 되는 것만도 아니다. 국내 산업의 대외경쟁력이 떨어지면 재앙으로 변할 수 있다. 당장 일본에서는 “한국 진출이 가속화할 것”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이번 협정 체결로 일본의 대한국 수출공산품 관세 철폐율이 현재의 19%에서 단계적으로 92%까지 높아지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다르지 않다. 관세장벽이 허물어지면 역내 기업들 사이에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경쟁력을 잃으면 패배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신남방 정책을 아무리 외쳐 봐야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에서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하지만 산업·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 전략은 찾아보기 힘들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제한으로 대외 가격경쟁력은 추락하고, 거미줄 규제에 기업의 손발은 묶여 있다. 이런 식으로 ‘정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산업·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반기업·친노동 규제 철폐가 최우선 과제다. 경쟁력을 갖출 때 경제영토 확장은 번영의 토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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