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새 대통령 ‘조 바이든 시대’를 맞고 있다. 1월 20일 취임식을 갖는다.

미국이 새 대통령 ‘조 바이든 시대’를 맞고 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11월23일(현지시간) 공개한 첫 내각의 외교·안보팀 진용은 한반도 정책의 기조(基調) 변화를 예고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와 관련, 북·미 양자 회담보다는 6자 회담과 같은 다자(多者)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대응하려는 포석이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외교·안보팀의 투톱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내정자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 핵(核)합의 타결의 산파역을 수행한 인물들이다. 또 북한 문제는 북·미 간 직접적인 양자(兩者)보다 이란식 다자 접근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선호한다. 대북협상도 정상 간 ‘톱다운’(top down) 방식보다는 단계별 실무회담을 거치는 전통적 해법인 '바텀업'(bottom up)을 추구한다. 두 사람은 그동안 기고와 강연 등에서 북한과의 실무협상을 통한 단계적 접근, 대북 협상력 확보 차원의 지속적 제재·압박, 제재 전열 유지를 위한 동맹국 및 중국 등과의 공조체제 강화 등을 강조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 만나 비핵화 등을 위한 ‘톱다운’의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으나 실질적 조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반면 바이든 당선인은 김 위원장을 ‘폭군’, ‘독재자’로 부르며 김 위원장이 핵 감축을 사전에 보장하지 않으면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쐐기를 박은 바 있다. 구체적 비핵화 진전이 담보되지 않는 한, 이벤트성 북·미 정상회담은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블링컨도 김 위원장을 ‘사상 최악의 폭군’이라고 칭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1기 당시 바이든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내는 등 약 20년간 함께 일해 ‘바이든의 분신’으로 꼽힌다. 설리번은 블링컨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3인의 ‘대북코드’가 딱 맞는 셈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김 위원장과의 회담 전제 조건으로 ‘북한의 핵전력 감축’을 요구했고, 블링컨도 지난 9월 북한의 핵확산 감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차기 바이든 정부는 대북 강경론의 기조(基調) 위에서 오바마 정부 당시의 ‘전략적 인내’ 정책 대신 ‘더 큰 당근과 더 큰 채찍’을 동원해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미사일 기술 고도화에 질주한 오바마 정부 때와 현재의 북핵 위협은 그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상태다. 블링컨과 설리번은 북한 문제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한국 등 동맹국과 공조체제를 강화하고 중국이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두 사람이 이란 핵 협정에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유럽연합(EU)의 참여를 이끈 것처럼 국제적인 북한 핵·미사일 협정체결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

실제로 블링컨은 지난 9월 CBS와 회견 및 2018년 6월11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북한 문제의 이란식 해결책을 제시한 바 있다. 설리번도 2016년 5월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연설에서 “북한과 이란에 동일한 전략을 동원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바이든 당선인은 12월4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의 당선 인증으로 백악관 새 주인이 되기 위한 ‘매직넘버’를 공식적으로 확보했다. 알렉스 파디야 캘리포니아 국무장관은 이날 캘리포니아주에서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를 공식 인증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AP통신 집계 기준, 총 279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대통령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 절반인 ‘매직넘버’(270명)을 넘기게 됐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50개주 가운데 선거인단이 가장 많이 할당된 곳이다. 미 대선의 승자는 대선일 직후 결정됐기 때문에 각 주(州)의 당선인 인증과 선거인단 확정은 형식적인 절차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올해 대선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음으로써 주별 당선인 인증 및 선거인단 확정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란식 핵해법 다자협력 바탕 단계적 접근

2021년 1월 20일 출범하게 될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진용 윤곽이 드러나면서 이들이 주목하는 이란 핵합의 모델이 어떻게 북핵 문제에 적용될지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이란식 해법이 다자 접근법을 통해 핵동결을 전제로 단계적·체계적 제재 완화를 추구하는 반면, 그동안 북한은 포괄적이고 일괄적 타결 방식을 선호해왔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블링컨은 북핵 문제 해결에 이를 적용할 의사를 밝혀왔고, 설리번은 오바마 행정부 때 이란 핵 협정의 토대를 닦기 위한 초기 회담의 수석대표를 지내는 등 설계에 관여했다.

이란 핵 합의는 2012년 6월 미국 주도로 제재 전문가 등이 참여해 시작됐다. 이후 2013년 11월 잠정적 합의를 거쳐 2015년 4월 최종 합의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 타결됐다. 내용은 이란이 먼저 원심분리기 수를 줄이면서 농축우라늄은 저농축 및 비축량을 감축하고, 중수로 건설을 포기해야 하며, 약속 이행이 확인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 등이 석유 금수(禁輸)와 해외자산 동결 등의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이다. 향후 이행돼야 할 장기적 조치로는 최대 25년까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우라늄 농축 공장 등 관련 시설 감시와 사찰을 이행하도록 하고, 10년 동안 협정 위반에 따라 다시 제재할 수 있는 ‘스냅백’ 조항도 넣었다.협상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EU까지 참여해 단계적 접근을 통해 신뢰를 쌓고 시설 사찰과 검증 범위 등에 대해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하는 성과를 냈다.

이란 핵 합의 모델을 북핵 문제와 연결시켜 보면 향후 동맹국, 중국 등과 공조한 다자 접근법을 통해 핵동결을 전제로 단계적·체계적으로 제재를 완화하는 해법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블링컨 내정자는 단계적 접근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일부를 완화하는 조건으로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 신고, 국제 감시 하에 농축·재처리 시설 동결, 일부 핵탄두와 미사일 폐기 등을 이행하는 중간합의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다음 단계에서 포괄적 합의를 하기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블링컨은 밝혔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비핵 정책을 유지하며 비핵화 협상에도 적극적이었던 이란과 달리 북한은 핵무장을 천명해온 데다 외부지원 없이 자력갱생으로 제재를 극복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상태다. 북한은 그동안 비핵화 협상에서 핵 신고와 폐기에 이은 완전한 비핵화를 경제제재 해제, 북·미 관계 정상화와 맞교환하자는 해법을 강조했다. 북한은 2019년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에서 미국이 자신들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적대시 정책을 선제적으로 철회하라고 밝힌 바 있어 북핵을 동결하겠다는 의지가 높은 바이든 정부의 북핵 협상에 북한이 응할지가 관건이다.

 

●대북 강경파 전면 포진…‘평화프로세스’ 엇박자

美외교·안보팀 ‘블링컨·설리번’ 체제…퍼주기식 대북 접근 동의 얻기 어려워

바이든 새 정부의 외교·안보팀에 오바마 정부 출신 인사들이 집중 포진함으로써 ‘정통 외교’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전통적인 미국 외교·안보 진용이 복원된 만큼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내정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등 낯익은 얼굴의 등장에 한국 정부에선 안도감과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 외교·안보팀, 한·미동맹 중시는 긍정 신호

두 사람 모두 한국과 같은 동맹국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정부로선 다행스러운 일이다. 두 사람이 북한 핵 문제 등 현안에 대처하면서 동맹국과의 협력을 중시(重視)하는 ‘동맹파’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들이 누구보다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실무형이고 차기 미국 정부의 한·미(韓美) 관계와 북·미(北美) 관계 재정립 과정에서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강경파’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트럼프 정부와 비교할 때 바이든 정부의 한·미 양국 관계는 순항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한·미 동맹 관계를 경시(輕視)하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트럼프는 한국 등 우방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면서 일방적으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5배로 올리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한·미 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블링컨-설리번 팀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 등 한·미 간 현안에 소리 나지 않게 대처하고, 한·미 양국 간 긴장 관계도 누그러뜨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문제는 블링컨-설리번 팀이 한국 정부와 대북 정책을 놓고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트럼프 정부는 방위비 분담금 등 한·미 간 현안을 놓고 대립했지만 대북 정책에서는 비교적 손발이 잘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이니셔티브를 강력하게 밀어붙였고,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담판을 통해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과 맞아떨어졌다.

 

●대북제재 강경파, 文정부와 비핵화 마찰 우려

반면 블링컨과 설리번이 이끄는 바이든 외교·안보팀은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선뜻 보조를 맞추길 주저할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 정부 시절 북한 문제를 다뤄봤던 그들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론자가 됐다고 한다. 그런 북한을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려면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의 강도를 높여나가야 한다는 게 블링컨과 설리번의 판단이다. 이런 이유로 김 위원장과의 대화를 우선하고 화해·협력을 앞세우는 한국 정부의 대북 접근에는 바이든 정부가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와 정반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바이든 당선인보다 블링컨, 설리번 내정자 등이 한·미 관계나 북·미 관계의 핵심 정책을 실질적으로 결정하고, 바이든 당선인의 추인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바이든 정부의 베테랑 외교·안보팀을 상대로 치열한 밀당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바이든 당선인의 외교안보라인은 동맹가치 복원과 국제질서 회복을 내세울 것이고 북·미관계 재검토에 들어가며 동맹국인 한국의 의견을 청취할 것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재검토 기간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비핵화 여정에 속도를 내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매파 외교안보팀… 文정부, 대북정책 수정 불가피

바이든 당선인이 정통 외교관인 블링컨을 외교사령탑 국무장관에 발탁한 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동맹관계를 파탄시킨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뒤집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외교안보 전문가인 설리번과 베테랑 외교관인 린다 토머스-그린필드(유엔주재 미국 대사로 내정)를 중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주도하게 될 블링컨은 대북 강경파로 평가받고 설리번도 대북제재 강화론자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이들은 대북제재와 주변국들과의 공조를 강화해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려 할 것이다. 정상들끼리 통 큰 합의를 도출해내려던 트럼프 정부와는 상반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깜짝 쇼’식 북핵 해법은 유효기간이 지났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가 요동칠 판인데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마이웨이’를 고수한다. 북·미간 중재자를 자임하며 한반도 종전선언이나 남북관계 개선으로 북을 대화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환상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미국은 지금 완전히 성격이 다른 정부로 바뀌는 과정에 있다. 이런 때일수록 바이든 진영의 의중(意中)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새 외교안보팀 인선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읽고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바이든의 새 외교안보팀과 소통하면서 손발을 맞추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그래야 양국 간 신뢰를 회복하고 우리 외교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다.

 

●對中 저자세 외교로 ‘바이든 시대’ 장애

방한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11월2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訪韓)에 대해 “여건이 성숙하자마자 방문이 성사될 것”이라며 “조건은 코로나19가 완전히 통제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장관과 회담 후 한국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으로 연내 방한이 어려움을 시사한 것이다. 이번 방한이 미국 견제 차원이냐는 질문에는 “세계에 미국만 있는 게 아니다”며 “한·중은 방역 협력, 지역 안정을 지키기 위한 협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왕 부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함께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완전한 비핵화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왕 부장이 일본에 이어 한국을 찾은 것은 한·중(韓中)의 현안 조율과 함께 한·일(韓日)이 미국 새 정부와 밀착하는 것을 막으려는 성격도 담겼다. 시 주석은 최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최종 서명에 이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선 미국이 탈퇴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의사를 내비치면서 미국에 견제구를 날렸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도 24일 아시아·태평양 동맹 강화를 강조하면서 이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중국 눈치를 봐왔지만 실익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으로부터 무시당하는 일이 잦았다. 중국 내 서열 20위권에 있는 왕 부장을 대통령을 비롯해 당·정·청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면담하는 것은 지나치다.

2021년 1월 출범하는 바이든 정부는 동맹국들과의 공조를 통해 중국을 옥죌 전망이어서 미·중 갈등이 고조될 것이다. 중국 앞에선 작아지는 기존 정책으론 대응하기 어렵다. 북핵 해법 조율도 필요하다. 한·미동맹을 복원하는 바탕 위에서 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중국과의 우호관계도 증진하는 방향으로 외교정책을 손봐야 한다. 원칙과 가치의 기반 위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외교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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