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의 ‘짐’ 국가부채 경고음이 크게 울리고 있다. 국가와 가계, 기업 등 우리나라 모든 경제 주체의 빚 총액이 5000조원에 육박하면서 역대 최고치로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정부에서 국가채무가 이전 세 정권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기획재정부의 ‘월간 재정동향’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부채는 2198조원, 가계부채는 1600조원, 기업부채는 1118조원으로 모두 합치면 4916조원이다. 추 의원이 추산한 국가부채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빚의 총량으로, 공식 국가채무(중앙정부+지방정부 채무)에 공공기관 부채, 공무원과 군인 등 연금충당부채까지 더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의 먹구름은 언제 걷힐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유형의 부채든지 경제주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의 경우 가계와 기업, 국가 빚 줄이기에 힘써야겠다. 특히 가계부채가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우려를 사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감염병 발병으로 영업제한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는 '자영업 손실보상제' 법제화가 정부여당에서 추진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회의에서 "정부의 방역 기준을 따르느라 영업을 제대로 못한 분들에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며 이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라고 밝혔다.

이미 국회에서 방역조치로 인한 영업 손실을 보상·지원하는 법안들이 발의된 상태로서 관계부처가 국회와 함께 법적 제도개선에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사실 1년 넘게 코로나19가 계속돼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4차례 추경과 맞춤형 피해지원으로는 아픔을 온전히 치유해주기엔 태부족한 실정이다.

정부가 방역을 위해 수시로 영업을 금지·제한하면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희생을 계속해서 강요할 수는 없다는 공감대도 크다. 또한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앞으로 이와 유사한 신종 감염병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기에 어떤 형식으로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희생을 보전해주는 일이 요청되고 있다.

반면 걱정도 작지 않다. 재정건전성 악화다. 당장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법제화한 나라는 찾기가 어렵다"며 우회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게 잘 보여주고 있다. 기재부는 법으로 하는 게 맞는지, 법으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 하는 게 맞는지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고 있다. 결국 돈이 문제다. 나랏돈 관리를 책임지는 기재부가 마지막까지 버티는 이유다. 코로나19로 인한 영업 피해 보상 범위를 얼마만큼 잡느냐 따라 소요 금액은 천차만별이다. 일부만 지원하더라도 필요한 액수는 상당하다.

예컨대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손실 매출액의 50%(일반 업종)에서 최대 70%(집합 금지 업종)까지 보상하는 안을 제안했다. 22일 관련 특별법도 발의했다. 이 경우 정부가 보상하는데 월평균 24조7000억원이 든다. 집합 금지, 영업 제한 기간을 4개월로 가정하면 총액은 98조8000억원에 이른다. 올해 정부 총예산(558조원)의 17.7%에 달할 뿐만 아니라 보건ㆍ복지ㆍ고용 예산(199조7000억원)의 절반에 육박한다. 1년 치 교육(71조2000억원)ㆍ국방(52조8000억원) 예산을 뛰어넘는다.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그보다 덜한 최저임금ㆍ임대료의 20%를 지원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물론 큰돈이 든다는 점에서 다를 건 없다. 한 달 1조2370억원, 연간으로는 14조844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범위를 넓히든, 좁히든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건 우리나라 자영업계 특성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자영업 종사자 수는 657만3000명으로 전체 취업자(2690만4000명) 가운데 24.4%를 차지한다. 생산액은 국내 경제의 17.5%(지난해 3분기 국내총생산 기준) 비중이다.

법제화가 돼 있거나 자영업 피해에 대한 보상 규모가 큰 독일ㆍ호주ㆍ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자영업 취업자 비율이 10% 안팎으로 한국의 절반도 안 된다. 업소 당 통 크게 지원하고, 법으로 규정하더라도 한국만큼 재정 부담은 크지 않다는 의미다.

문제는 더 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자영업자 매출이나 소득을 파악하는 데도 불투명한 점이 많다. 정확한 피해 액수를 산출하고 대상자를 선별하는 데 어려움이 클 수 있다. 지원 대상에서 빠진 자영업자의 반발도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손실이 난 걸 보전을 해준다 하면 열심히 경제 활동을 할 유인도 줄어들 위험이 있다. 기존 고용유지지원금에 재정 투입을 늘려 고용 충격을 완화하는 등 다각도의 대안 검토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나라 곳간은 이미 비상 상황이다. 올 한 해만 150조원 국가채무 증가(지난해 본예산 대비)가 예고돼 있다. 올해 예산도 적자 국채를 발행하며 근근이 짰는데 보상제까지 더해진다면 고스란히 빚만 더 쌓일 뿐이다. 사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기본소득제 등 이전에도 비슷한 논란이 반복됐다. 결국 선거철과 맞물려 정치권 뜻대로 결론 났다. 포퓰리즘, 대중영합주의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초저출산으로 인구절벽이 현실화되고 있는 때 미래세대에 감당 못할 짐을 지우는 과도한 국가부채 증가는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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