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경택 총재

배구선수 이재영·다영 자매가 소속팀(흥국생명) 경기에 뛸 수 없게 됐다. 국가대표 선발에서도 제외됐다. 언제 코트로 복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두 선수가 중학생 때 배구부 동료에게 폭력을 가한 데 따른 일이다. 남자배구선수 송명근·심경섭도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두 선수는 잘못을 인정하고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다른 스포츠 스타도 과거 행적으로 인해 선수 자격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폭력은 있는 일’ 관용적 사고 문제

이에 앞서 아이돌 가수, 가요 경연대회 출연자 등도 청소년기에 주변 학생을 괴롭혔다는 이유로 무대에서 스스로 내려와야만 했다. 이 일련의 사태는 피해자들의 문제 제기에서 비롯됐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주장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이들에게 ‘신문고’ 역할을 했다. 학교와 운동부에서의 폭력은 늘 있는 일이라는 잘못된 관용적 사고가 더는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도 했다. 가해자들에 대한 동정 여론이 미미하고 비난의 목소리가 비등한 현실이 변화를 상징한다.

특히 스포츠 분야에서의 폭력은 켜켜이 쌓인 폐단. 이야말로 적폐다.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감독과 코치가 선수들을 때렸고, 선배가 후배를 괴롭혔다. 유망 선수들은 위세를 부리며 동료를 학대했다. 맞고 자란 선수들은 자신이 선배·지도자가 됐을 때 똑같이 주먹을 휘두르거나 몽둥이를 들었다. 그렇게 폭력의 대물림이 지속됐다. 인권의식이 향상되며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피해자는 곳곳에 있다. 지난해 국가 인권위원회가 학생선수 5만여 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4.7%가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런 조사의 특성을 참작하면 실제 피해 비율은 이보다 높을 것으로 짐작된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선수도 많을 것이다. 과거에는 다양한 조직에서 ‘군기(군의 기강) 잡는다’라는 말로 괴롭힘을 미화했다. 요즘은 군에서도 폭행과 가혹행위가 거의 사라졌는데 유독 운동부에 한 세대 문화가 남아 있다. 이런 점에서 학교 스포츠가 시대에 가장 뒤떨어진 분야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을 때리고 괴롭히는 것은 반인권범죄라는 사실을 교사와 스포츠 지도자들이 먼저 깨닫고 그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스포츠 조직 폭력은 관행도 구습도 아니다. 다른 이의 신체와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악행일 뿐이며 스포츠 정신에 대한 모독이다.

10년 전 지방 대도시에서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해 학생 유서에 물고문과 구타, 금품 갈취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몇 시간 전 엘리베이터에 쪼그려 앉아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CCTV에 녹화됐다. 그걸 본 전국의 학부모들 가슴이 무너졌다. 몇 해 전 또 다른 도시에선 여중생 네 명이 또래 여학생을 집단 구타한 사건이 터졌다. 얼마나 가혹하게 때렸는지 맞은 학생이 피눈물을 쏟았다. 10대 아이들의 일탈로 볼 수 없는 범죄행위였다.

학폭 피해가 아무리 극심해도 시간이 지나면 세상에서 잊힌다. 그러나 피해자도 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가해자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로 대중의 박수를 받게 되면 피해자는 불공정과 억울함을 느끼고 심리적 2차 가해를 입을 수 있다.

사회 전반 폭력 실태 점검 시급

과거엔 이를 토로할 수단이 없었지만, SND로 ‘게임체인지’가 됐다. 몸의 상처는 나아도 심리적 타격은 아물지 않는다. 학교폭력의 시효가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10년 전 일이 어제 일처럼 퍼져나간다. 가해자가 유명 아이돌이나 걸그룹, 스타 운동선수라면 더욱 치명적이다. 학생 때 또래를 괴롭히려면 평생 두 발 뻗고 못 잘 것을 각오해야 한다.

청소년기 폭력은 어른이 되어 겪는 것보다 더 깊고 오랜 상처를 남긴다. 어린 탓애 적절한 대응을 못 해 피해를 키운다. 학폭을 반드시 근절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가해 아이들만 탓해선 재발을 막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학교부터 국가대표 과정 전반까지 폭력이 근절되도록 각별하게 노력해 달라”라고 주문했다. 비난 여론을 가라앉히기 위한 면피성 대책으로는 체육계 폭력을 막을 수 없다. 피해자가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고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 전반의 폭력 실태를 점검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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