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종택 주필

정치는 아무나 하나? 아니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전체를 볼 수 있는 통전적 시각에다 조율 능력, 비전, 도덕성 등이 요청된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자질이 수반돼야 하는 것이다. 물론 어느 일이든 식견과 직업윤리 등이 수반된다. 그래야만 정치 등 맡은 바 일을 잘할 수 있다. 한나라 때 대학자 한영은 “훌륭한 정치인은 인정과 본성의 마땅한 것을 따라 하늘과 사람 관계를 조화롭게 하기에 만물이 풍성하게 된다.”고 밝혔다.

형평성에 어긋난 재난지원금

그렇다. 정치는 공익을 위해 인성에 근거한 행위여야 한다. 현실은 다르다. 고운 심성과 콘텐츠를 지닌 사람보다 ‘번지르르한 말에 빈 공약 같은 선물 공세’를 잘하는 이들이 선택받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겉모습으로만 평가하다 보면 포퓰리즘, 곧 대중영합주의에 빠질 소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사실 사람의 얼굴만 보고는 선악 분간이 쉽지 않다. 물은 건너보아야 알 수 있고, 사람은 겪어보아야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옛말이 틀린 게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정부는 ‘무원칙한 돈 살포’를 스스럼없이 하고 있어 걱정이다. 여권은 4차 긴급 재난지원금 규모를 19조 5000억 원으로 책정했다. 한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뿐 아니라 노점상에게도 지원금을 준다고 한다. 재정이 넉넉하다면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인 노점상 등에 합리적 기준에 따라 재정 지원을 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 지원 대상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자영업자들은 세금을 납부하고 있지만, 노점상은 세금을 내지 않고 임대료도 없다. 자영업자들은 자신들의 세금으로 노점상을 지원하는 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빚잔치라는 사실이다. 이번 추경 예산 9조 9000억 원은 국채 발행으로 마련되고 세계잉여금(2조 6000억 원), 한국은행 잉여금(8000억 원), 기금 재원(1조 7000억 원)으로 확보된다. 추경 절반 정도인 10조 원 가량은 적자 국채를 발행해 조달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역대급인 '슈퍼 예산'을 편성하면서 이미 국가 채무가 956조까지 늘어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추경으로 20조의 빚을 더 지고 앞으로 소상공인 손실보상까지 더해지면 올해 국가 채무 1000조 원 돌파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국민 1인당 약 1880만 원씩 빚을 지게 되는 셈이다.

여권이 이처럼 무리수를 써가며 4차 추경을 밀어붙이고 있는 이유는 불 보듯 훤해 보인다.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겨냥한 선거용이라고 하겠다. 여당이 지난해 21대 총선을 앞두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 이슈를 제기해 단맛을 톡톡히 봤던 탓에 야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선거 때 일반 국민은 10만 원만 돈을 나눠줘도 구속되는데 대통령은 선거를 앞두고 국채를 발행해 나랏돈을 20조 원씩 돌려도 괜찮은 건가”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겠는가.

여기에 더해 여권이 3월 중 입법 추진을 하고 있는 ‘상생연대 3법’(손실보상법·협력이익공유법·사회연대기금법) 또한 국가부채 폭증은 안중에 없이 보선과 내년 대선을 겨냥한 재정 살포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D2)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2.2%(810조7000억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0.0%의 절반에 못 미친다. 역대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염두에 두고 일반정부 부채를 40% 이하로 유지하고자 노력한 결과다.

미래세대의 짐 담보로 표 구걸

문제는 국가채무 증가 속도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현 정부 출범초기인 2019년 결산 때 36.4%였다. 그러다 올해 예산 기준으로 47.3%로 전망된다. 향후 자영업자 손실보상 법제화와 ‘전 국민 위로금’ 지급 가능성 등 추경이 거듭되면 올해 안에 50%에 육박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사고 있다.

국가채무의 증가속도가 빨라지면 국가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친다.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해 초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이 급격하게 상승할 경우 중기적으로 국가신용등급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여권은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권력을 완전 자신들의 것이라 생각하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미래세대의 짐을 담보로 표를 구걸하는 대중영합적 포퓰리즘을 이쯤에서 멈추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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