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나무는 벗이다. 동반자다. 사람들은 나무와 인간을 동일시했다. 훌륭한 큰 인물을 거목(巨木)이라고 했듯 그렇게 함께 역사를 이뤘다. 나무는 인간 삶의 상징어이다.

현실적으로도 나무가 인간에게 긍정적 효과를 미치는 과학적 근거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채근담’은 숲의 고마움에 대해 이렇게 알려준다. “숲속에 살면 가슴속이 맑고 시원하니 사물을 대할 때마다 모두 아름다운 생각을 갖게 한다(山居胸次淸灑 觸物皆有佳思).”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들은 마음의 안정을 필요로 한다. 한데 인류가 숲을 파괴하거나 환경오염 때문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홍수와 가뭄 등 자연의 역습이 심해지고 있다. 숲과 하천 등 자연을 보호해야 사람도 살 수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강조돼 왔다.

“내가 아끼는 만병통치약은 숲 속의 아침 공기를 마시는 것이다. 아, 이 신선한 바람!”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 소박한 생활만이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미국의 시민운동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수필집 ‘월든’의 한 구절이다. 사실 누구나 한 번쯤, 특히 현대의 도시인들은 숲 속 생활을 그린다. 깨끗한 공기와 맑은 옹달샘을 마시며 심신을 흠뻑 적시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아 꿈을 접곤 한다.

숲에는 나무와 물, 맑은 공기, 생명이 넘친다. 물론 나무가 주인공이다. 나무는 사시사철 옷을 갈아입는다. 힘없이 바람에 흔들리고 눈비에도 하염없이 젖는다. 그러나 처음 자리를 반드시 지킨다. 그렇게 인내하면서 성장해 사람과 동물들에게 온갖 이로움을 안겨준다. 여름날의 그늘, 겨울의 바람막이, 철 따라 건네주는 열매 등.
나무의 ‘교훈’이 적지 않기에 김하인의 장편소설 ‘국화꽃 향기’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나무는 한 번 자리를 정하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아. 차라리 말라죽을지라도. 나도 그런 나무가 되고 싶어. 이 사랑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일지라도 ….”

나무를 키우는 일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명재상 관중도 말하지 않았던가. “곡식은 일 년 계획이지만 나무는 십 년은 정성들여 키워야 한다(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고. 지구 온난화로 꽃이 피는 시기가 빨라지면서 3월 중순에 식목 행사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숲을 사랑하는 국민 의식을 높이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해 해마다 4월5일을 식목일로 정해 나무 심기를 했는데 요즘은 보름 정도 빨라졌다. 식목일을 당초 이날로 정한 것은 24절기의 하나인 청명 무렵이 나무 심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제는 온실효과 등 인간의 개발 욕심으로 빚어진 급격한 환경 변화가 식목일까지 바꾸게 하고 있다. 인과응보가 따로 없다.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