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태 논설위원

행정구역 광역화와 단순화를 통해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을 감소시키고, 예산 낭비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현행 부적절한 행정구역을 개편함으로써 효율적인 행정서비스, 사회자원의 배분, 조화로운 지역개발 추진이 가능하고 아울러 망국적인 지역감정 해결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구역 개편은 지역 간의 갈등과 선거제도에 맞물려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조선왕조 행정구역은 전국을 팔도로 나누었다. 고을의 크기에 따라 지방관의 등급을 조정하고, 작은 군·현을 통합하여 전국에 약 330여 개의 군·현을 두었다. 왕조 초기에는 고려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였으나, 태종 13년(1413년)에 이르러 8도로 구획을 나누어 이후 약간의 변경은 있었으나 대체로 조선왕조 말까지 유지되었다.

고종 32년(1895년)에 이르러 부·군·현의 각 칭호를 고쳐 군수로 하는 한편, 8도를 23부로 고치고 부에 관찰사를 두었다. 그러나 다음 해에는 다시 구제에 따라 13도로 고치면서 대폭 개편하였다.

일제 시대에도 이러한 13도 제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면제가 도입되어 기초 행정 단위로 부·군·면제가 정착되었다. 해방 이후 미 군정이 실시 되고 큰 변화는 없었으나, 1945년 경성부가 서울시로 바뀌었고, 1946년 전라남도 관할 하에 있던 제주도가 분리되어 남한 지역에 8도에서 9개 도가 되었다. 이후 1949년 서울시가 서울특별시로 명칭이 바뀌었고, 14개 시로 출범 1963년부터 부산시를 시작으로 직할시 제도가 도입되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구역을 살펴보면, 서울특별시, 세종특별자치시, 제주특별자치도, 6개 광역시, 2개 행정시(제주시, 서귀포시), 75개 시, 8개 도, 82개 군, 69개 자치구, 28개 일반구, 3.487개 읍·면·동으로 구성되었다.

아울러 총 243개 지방자치단체로,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226개 기초자치단체로 구성되었다. 이에 따라 광역자치단체 의원 733명과, 기초자치단체 의원 2.888명 등 총 3.621명의 지방의회 의원을 두고 있다.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한 이래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1995년 민선 단체장이 출범하면서 민선 지방자치가 실시 되고 주민 참여, 주민 통제 등을 통한 민주주의 신장과 함께 행정,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문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 국가 운영의 패러다임을 집권과 집중에서 분권과 분산으로 전환하는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한 일종의 국가 개조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주민의 참여를 기반으로 지방자치단체의 혁신적인 노력과 역량 강화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미래가 마냥 낙관적이지 않다. 지방정치의 과잉으로 인한 비효율, 지역 갈등, 부패 등과 관련된 부정적인 평가도 제기되어 왔다. 지방자치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시각은 일부의 편향된 사고에 비롯되지만, 국가 사회적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지방 내부의 책임도 있다.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등으로 행정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가 구조적 현실로 대두되고 있으나 지방자치 운용 방식은 과거의 물량 위주, 외형적 장치행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지방자치에 기대하는 시대 정신은 담론적 정치 구호에서 소득, 고용, 복지, 환경, 교통, 주거 등 실생활에서 체감되는 구체적인 성과로 전환하는 추세다. 국가 차원에서도 지방자치는 최종 국정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지, 지방자치 자체가 최종 목표일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처럼 구조적 환경 변화, 국가 운영 패러다임 전환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그간 26년의 지방자치를 실시한 동안 정치·행정·고용·소득·문화·체육·안전·복지·보건 등 실생활의 변화 양상을 진단하고 이를 토대로 지방자치 제도가 나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사회 저변에 확산하는 지방자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교정하고, 더 나아가 지방자치의 당위성 및 필요성, 시대 가치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방행정체제는 지방정부가 주민에게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좋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주민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한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교통·통신의 발달, 도시·농촌의 불균형 심화 등 지방행정체제를 둘러싼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지방행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 되어 왔다.

우리나라는 1995~1997년에 도시지역의 기초자치단체인 시와 농촌 지역의 기초자치단체인 군을 통합하는 도농 통합을 추진했고, 2006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를 설치해 자치계층을 1계층으로 개편하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추진한 바 있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논의는 17~18대 국회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졌고, 2010년에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 소속의 "지방행정체제 개편위원회"를 구성해 도·자치구 및 군의 지위와 기능을 재검토하고 시·군·구의 통합을 위한 기준을 수립하도록 했다. 또한,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회의 심의를 거친 시·군·구 개편안을 당해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은 2014년 초까지 주민투표나 의회 의결로 통합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2010~2014년 동안 추진된 시·군·구 통합정책은 20개 지역의 50개 시·군·구가 통합 건의하고, 지방행정구역 개편위원회가 16개 지역 36개 시·군·구를 통합 대상으로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통합에 이른 것은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뿐인 성과로 그쳤다.

2020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주요 내용은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를 특례시로 지정하고, 행정수요와 국가균형발전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과 절차에 따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정하는 시.군.구가 특례대상에 포함되었다.

행정구역 통합정책은 근래에 쟁점화되어 추진된 정책이 아니라 시기적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아주 오래된 정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간의 갈등과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선행 연구와 행정구역 통합정책을 평가하는 연구들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 설정의 틀에서 논의되어 왔기 때문에 정책을 수행하는 실천적 의미를 부여하는 데 한계가 있다. 행정구역 통합정책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범국가적 차원에서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소통과 협조의 원리에 기초해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가운데 추진 되어야 하며, 중앙정부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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