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종택 주필

진정한 정치란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퇴직 후 최소한의 품위 있는 노후생활을 담보하는 연금제도는 이런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 국민연금은 물론 공무원-군인연금은 다 이런 순기능을 지니고 있다. 마땅히 가입률을 높이고, 퇴직 후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독려해야 한다.

공무원·군인연금 ‘부채’ 1천조원

그러나 연금제도 유지엔 원칙이 있어야 한다. 국민 일반의 세금으로 공무원 연금의 부족분을 메우는 식은 곤란한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적자 행진’ 중인 공무원과 군인연금 개혁이 시급하다. 지난해 기준 퇴직 공무원·군인에게 향후 연금으로 지급해야 할 돈(연금충당부채)이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었다.

기획재정부의 ‘2020회계연도 국가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는 1044조 7000억원으로 2019년보다 100조 5000억원(10.6%)이나 증가했다. 공무원연금에서 71조 4000억원, 군인연금에서 29조 1000억원이 각각 늘어났다. 문재인정부 출범 전 2016년(752조 6000억원)과 비교하면 불과 4년 만에 약 350조원(38.8%) 급증했다. 아연실색할 일이다.

연금충당부채는 향후 70년 간 공무원·군인연금 수급자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총액을 추정해 현재가치로 환산한 비용을 뜻한다. 연금충당부채는 연금 수입 상당 부분을 가입자(근로자)와 정부(고용주) 보험료로 충당하고 있기에 국가부채와 달리 전부 ‘나랏빚’이라 보긴 어렵지만 결국엔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연금법상 적자 비용은 국가 세금으로 보전하도록 규정돼 있기에 하는 말이다.

공무원·군인연금 적자가 오래 전부터 발생했지만 이미 ‘국민 혈세’로 보전해오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9년 공무원·군인연금 적자를 메워주는 데 들어간 국고지원금은 각각 2조 563억원, 1조 5740억원이다. 이 기간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은 각각 42조 7498억원, 1조 2201억원의 흑자를 기록해 대비된다.

문제는 앞으로 세금 투입이 천문학적으로 급증할 전망이라는 사실이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수급자 수는 증가하고 가입자 수는 줄기 때문이다. 예상 국고지원 규모는 2030년 6조 8000억원, 2040년 12조 2000억원, 2060년 21조 4000억원 등으로 가파르게 늘어나리라는 분석이다.

공무원·군인연금은 사실상 고갈 상태로 국가재정에 여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을 시급히 단행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통합을 위한 법적, 제도적 기반 마련에 힘써야 한다. 우리의 미래세대는 물론 현세대의 삶의 질이 좌우되는 문제이기에 그렇다.

제대로 된 개혁이 없으면 최악의 경우 미래세대는 연금을 못 받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소수 노동사회단체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긴 역사의식을 갖고 연금개혁을 시급히 단행하길 바란다. 현 국회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보험료를 올림으로써 '표 떨어지는' 부담을 꺼려 연금 개편 논의를 완료하지 못할 수 있다. 이렇다면 국가의 연금 지급 보장 명문화 등 국민적 합의가 쉬운 내용부터 먼저 의결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돈 없는 고달픔'을 막고, 미래세대에겐 짐을 지우지 않는 차선책이다.

연금 개혁은 정의 구현의 ‘상징’

현재 퇴직 공무원들의 월 평균 수령액은 240만원 정도다.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 수령액 85만여원의 3배 가까이 된다. 문제는 공무원 연금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민들이 낸 세금이 몇조원씩 들어가고 있는 것은 원칙이 없는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이다. 정치권이 개혁 차원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엣 셩현은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은 법도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법도가 없으면서도 그의 일을 이룩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 ‘공공의 정의가 참된 보배’다. 정의를 세워야 정권의 통치를 편안히 하고 백성의 다스림이 오래 갈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 연금 개혁! 정의를 구현하는 상징적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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