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구 박사

교회가 왜 정치를 해! 목사가 왜 정치를 해!

기독교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인들도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다. 교회가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맞지만, 성직자가 정치에 참여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지배적 생각인 듯하다. 더구나 오랫동안 <정교분리>를 교리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교회는 구제와 봉사로 섬기는 일을 감당할 뿐, 정치적 발언을 금기시 하고 있다.

더구나 사람들은 과거 문00목사나, 함00신부 등이 성직자로서 과격한 정치 활동은 상관없고, 복음주의 보수주의 쪽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면 안된다고 한다. 애국운동은 몰라도 기독교적 정당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도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 수립 전 북한에서는 이미 장로교의 김화식 목사를 중심으로 <기독 자유당>도 있었고, 감리교 쪽에서는 <기독 민주당>도 있었다. 그리고 한경직 목사가 만든 <기독 사회당>도 있었다. 이런 기독당들은 북한 공산당에 의해서 철저히 파괴 되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조직에서는 교회가 정치적 발언을 하면 민중의 아편이요,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전부 체포하여 총살 시키거나 노동 교화소에 보내도록 했었다.

어떤 논객들은 한국은 다종교(多宗敎)사회인데, 기독당이 생기면, 카톨릭당, 불교당도 생겨 종교싸움이나 국론분열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자. 오늘날 우리나라가 뒤죽박죽 되고, 어디를 봐도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정부 집권자들과 국회가 철저히 공산주의 체계로 연방제로 질주하고 있다. 그것이 정치뿐 아니고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예술, 언론, 법조까지 붉게 물들어져 가도, 기독교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 안되고, 조용히 입 다물고 신앙생활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옳은가? 물론 과거에 교회 이름으로, 성도의 이름으로 정치한 사람들 중에 도덕적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도 많았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오늘날 정부나 국회에서 사회주의적 정권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장로와 집사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이 <정교분리>를 말할 때, 본래의 의미는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교회는 반드시 보호 받고, 교회의 예배가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일제는 이 정교분리를 교묘히 뒤집어서, <신사참배> 강요를 반대하던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박해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뇌리 속에는 신자나 불신자나 정교 분리가 원칙처럼 되어버렸다.

우리 입장은 교회가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자유>와 <정의>가 없어지고, 불법과 불의로 교회를 교묘하게 박해하거나, 코로나19를 핑계로 기독교를 통제하려고 한다면, 교회는 당연히 정치세력에 거세게 항거하고 큰 소리로 진리를 외쳐야 한다고 본다. 종교 개혁자요, 근대민주주의 조상 중에 한 분인 요한 칼빈(J. Calvin)은 말하기를

“목사에게는 두 가지 음성이 있다.

하나는 양들을 잔잔한 시냇물로 인도하는 부드러운 음성이고,

다른 하나는 이리가 와서 양들을 낚아채려할 때,

큰 소리로 고함치며 이리를 쫓아내면서 분노하는 음성이 필요하다”했다(목회서신 중)

이리가 양을 물어 죽여도 룰루랄라 노래 부르는 목자라면 그는 필시 삯군일 것이다.

필자는 오늘날 우리들의 상황과 유사한 19세기에, 과감히 기독교 정치의 모델이 된 화란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를 살펴보려고 한다. 카이퍼박사는 위대한 칼빈주의 신학자요, 대설교가, 대목회자, 대학의 총장과 교수, 대연설가, 대저널리스트, 대정치가였다. 그는 <반혁명당>의 당수이자, 수상(1901~1905)의 자리에 올랐던 분이다. 그의 사상과 핵심은 하나님의 <영역주권>이었다. “하나님은 교회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의 주인이다”라는 것이다.

당시 카이퍼가 기독교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이랬다. 19세기 유럽은 혁명과 전쟁의 연속에다, 계몽주의, 합리주의, 자유주의가 창궐하고, 진화론과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일어났다. 이런 사상에 깊이 물든 자들이 국회를 점령하고, 사회전반에 걸쳐서 <하나님을 없애라!(No God), 주인을 없애라!(No Master)>는 구호가 범람하던 사회주의 체제로 가고 있었다. 이때 카이퍼는 <인본주의>와 <유물주의>, <공산주의>가 판을 치는 정치적 상황에 대항하여 <하나님 중심> 곧 <성경중심>이요, <칼빈주의 세계관>으로 정치일선에 뛰어 들었다. 문제는 세계관이었다. 그래서 그는 교회를 자유주의로부터 지켜내어 역사적 개혁교회를 세우고, 진리를 지키려고 한평생 일했었다.

카이퍼의 생각은 거짓 사상이 지배할 때, <논리>는 <논리>로, <시스템>은 <시스템>으로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인본주의>, <사회주의>자들이 만들어낸 국가의 정책은 막아야 된다는 일념이었다. 그래서 그는 50년간 일간지, <스탠다드지>에 매일 같이 칼럼을 쓰고, 주간지 <헤럴드지>에 논문을 쏟아내어 잠자는 국민들을 깨웠다. 그리고 불꽃같은 대중설교와 연설로 사람을 움직였다. 또한 칼빈주의 세계관을 세우기 위해서 뿌라야 대학을 세우고, 중·고등학교를 세워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물론 카이퍼의 정치 모델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기독교 정당이 있다 해도 <기독>자를 꼭 붙일 필요도 없고, 굳이 기독교 정당이 집권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정치 혐오증에 시달릴 필요도 없다.

기독교는 예수 믿고 영혼 구원 얻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구속받은 성도가 발붙이고 사는 이 세상에 사회주의 세력이 창궐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분명한 죄악이다. 국가가 있어야 교회도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국가가 거짓 논리에 함몰되어 자유를 박탈하고, 정의가 없어지고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 당연히 큰 소리로 고함치며 항거하는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국민저항 정당이 필요하다. 예수 믿어 나만 구원 얻고 복 받으면 되고, 세상이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알바 아니라는 생각은 바로 <이원론적(Dualism)>사상이다. 교회와 세상에 대한 이원론적 사고가 한국교회의 질병을 키워 빛과 소금의 노릇을 못했었다.

위대한 성경신학자 헬만 리델 보스(Herman Ridderbos) 박사가,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한다>고 한 말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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