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본을 이루는 것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다. 이 만남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한다. 이와 반대 개념인 헤어짐은 인간을 슬프게 하고 아쉽게 하고, 마치 이제까지 간직해 온 소중한 세계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심정을 남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은 헤어짐은 없고 또 헤어짐을 전제로 하지않은 만남도 없다. 따라서 만남과 헤어짐은 하나의 불가분의 관계라서 어느 한쪽만 생각하는 것은 편협성을 면키 힘들다.

그러나 이런 이론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헤어짐 앞에 연약한 모습으로 변한다. 신파극에 등장하는 연인들의 이별 장면을 보면 모든 것을 희생 시켜 가면서라도 「헤어짐의 사건」을 제거하려 한다. 신파극뿐만 아니라 믿음의 조상으로 알려진 아브라함도 사라와 죽음을 통한 이별 앞에 슬퍼하였고, 예수님도 이별을 즐거운 상태로 보지 않으셨다. 하나님과 헤어져 있음이 곧 죄이고 보니 헤어짐은 섭섭한 모습이고 그 장면에는 으레 비가 내리거나 하얀 눈이 날린다.

필자가 경험한 만남 속에서도 익어져 버린 정과 사랑으로 못내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고, 함께 좀 더 도약해 보려던 꿈을 상실한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더욱기 ‘갑자기’라는 단어를 동반한 헤어짐은 더욱 그 상처를 크게 남기기 십상이다.

어찌 보면 헤어짐의 병중에서도 가장 큰 것을 수용해야 할 마당에 와 있는 것이다. 헤어짐이 더욱 커 보이는 경우는 만남의 관계가 비슷한 것이 아니라, 주는 자와 받는 자, 혹은 앞서는 자와 따르는 자의 관계일 때이다. 이는 그 중심을 잃어버린 공허가 더욱 커 보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러나 더 큰 것은 작은 것을 수용하기 마련이지만, 오히려 큰 것은 작은 것보다 쉽게 스스로를 수용할 수 있음도 사실이다. 일상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큰 어려움은 큰 고통이면서도 여유 있게 수용하는 모습을 자주 보지만 오히려 작은 것에 분노하기 십상이다.

이것은 왜인가? 그것은 큰 고통이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헤어짐도 그 고통이 클 때 만남의 의미를 알게 해주고 그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우리의 헤어짐은 언젠가부터 '우리'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그 안에 주인공을 끼워 넣은 관계가 드디어 ‘우리’의 실체를 바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한 것이다.

헤어짐은 항상 삶을 깊어지게 한다. 결혼식장에 안 가더라도 초상집에 가라는 충고는 인생을 성숙시키는 금언 중의 하나다. 헤어짐은 만남을 기대하게 하며 좀 더 나아가 만남의 광장을 확대해 가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따라서 헤어짐은 더 넓어진 만남의 광장을 제공받을 뿐만 아니라 장소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열린 마음을 제공한다.

그래서 예수님도 내가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셨다. 무엇보다도 헤어짐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준다는 것이다. 기존의 안정된 상황하에서는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타진해 보는 수준의 이론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고 또한 상황적으로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빈자리를 메꾸는 수준이 아니라 판단의 중요한 근거들이 뒤바뀐 경우에 사람은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에 쉽게 입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더 나빠질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막연하게 삶을 팔아왔던 시간대를 벗어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헤어짐은 그 대상과의 관계를 끝내는 것보다는 다른 차원으로 변환시키는 것이 되다 보니, 양쪽으로부터 힘을 얻는 셈이 된다. 그러면 누가 이 헤어짐의 마력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누구나 다 가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막연함으로 상황을 맞이하는 자는 흘러감도 막연함으로 바라본다.

반대로 이것을 수용하기 위해 준비하고, 준비할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즉각적인 대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자는 그 장점을 바라보는 것이며, 그 바라봄은 믿음을 낳고 믿음은 현실로 나타난다.

갑자기 다가온 헤어짐의 사건을 바라보면서 슬픔에 젖거나 희망을 상실하는 자들이 되지 않고, 이제까지 주인공을 통하여 씨뿌리고 물을 준 그 싹이 자라고 꽃피우며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자생력을 갖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되길 기도하면서 헤어짐의 새로운 미학을 생각해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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