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달식 논설위원

지금도 이 두 가지 시간에 대한 종류를 잘 아는 사람이 적지만, 1988년 시집 ‘카이로스’를 출판했을 때에는 이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학원 시절로 기억되는 시점에서 ‘카이로스’라는 단어를 김회권 교수님으로부터 듣고 그 의미를 이해했을 때, 내 가슴을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영어 이름도 카이로스이고 이메일 아이디도 동일하다. 당시 잘 아는 누나가 카페를 열면서 시인인 나에게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였다. 며칠을 고민하면서 30개가 넘는 후보를 만들고 최후에 이 ‘카이로스’를 거절한다면 더 이상은 없다고 선언을 했다. 그 이름이 채택되었고 신림동 대학생들이 많이 하숙을 하는 골목에 카이로스’라는 아담한 카페가 문을 열었다.

신기한 것은 카이로스라는 카페가 녹번동에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동인천역 건너편 신포동 언덕 위에도 있었다. 회사 근처라 직원들과 같이 그 카페를 찾은 우리는 흥분하며 마치 따지듯 물었다. ‘당신들이 카이로스의 의미를 알고 있기나 하냐고?’ 이 사건을 통해, 꽤 학식이 있어 보이던 카페 여주인과 매우 친하게 되었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카페에 모였었다. 나와 친했던 두 카페 여주인들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고, 모두 문을 닫았기에 그 근처에 가면 아쉬움과 그리움이 다가온다.

시간은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눌 수 있다. ‘카이로스’와 대조되는 ‘크로노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시계로 잴 수 있는 시간이다. 시작도 끝도 없이 순환되고 물리학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개념이다. 영어의 연대기(chronicle)가 이 어원에서 나왔고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는 방식이다.

이에 반하여 ‘카이로스’는 직선적 시간관이며, 시작과 끝이 있다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상황적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결혼의 시간을 보면, 육체적인 나이도 어느 정도 필요하나 만남의 대상이 있어야 하고 결혼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성립하는 시간이다. 독일에서 결혼은 호흐짜잇(Hochzeit)인데 영어로 직역하면 하이 타임(high time) 이다. 다시 말하면 최고의 시간이 최적의 시간인 것이다. 역사나 사회학에서도 이 ‘카이로스’가 자주 인용되고 있다.

첫 시집을 낼 때 ‘카이로스’라는 제목은 너무 생경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 좋지 않다고 했으나, 나의 ‘카이로스’에 대한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었다. 시집이 5천 부가 인쇄되어 다 소모되었고 많은 서점에서 랭킹에 오르기도 하였지만, 출판사가 ‘88올림픽으로 인해 부도가 나는 바람에 나는 예상 못 한 카이로스를 맞았었다. 두 번째 시집을 낼 때는 더 친숙하고 사랑받는 제목으로 ‘사랑하기 위하여’를 제안했는데, 가족들이 너무 식상하다고 하여 ‘크로노스는 카이로스를 이기지 못하고’라는 좀 더 길고 독특한 제목을 달았다. 2000년이 되면서 시대가 바뀔 때 세계도 바뀌며 심지어 종말이 온다던 때에, 숫자에 불과한 크로노스는 질적인 변화를 이기지 못한다고 주창하였다. 이 시집을 본 어느 목회자가 ’당연하지!’라고 하였다고 지인을 통해 전해 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던 중 ‘카이로스’라는 시집이 다른 시인에 의해 출판되어 있고 그 이름을 사용한 카페가 다시 생겼다는 것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함을 느낀다.

유사하지만 조금 다르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이로스는 기회의 신으로 나온다. 앞쪽에는 머리가 있어 기회를 쉽게 잡지만, 뒤에는 머리가 없어서 때를 놓치면 다시 잡을 수 없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 본 칼럼은 에세이[너 그러면 행복하겠니]에서 발췌한 것이다.

 

장 달식 / 시인, 공학박사, 오페라 작곡가,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부회장, 대성나찌유압공업 대표이사, 기독대학인회(ESF) 이사장

에세이: [너 그러면 행복하겠니],

시집: [카이로스], [크로노스는 카이로스를 이기지 못하고],

오페라: [미라클], [아쿠아 오 비노], [당신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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