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옥 칼럼니스트
이광옥 칼럼니스트

 

늙어감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똑같은 방식으로 늙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마다 노화의 속도도 다르지 않는가.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그 의미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에이징(Ageing)이란 말도 그 중 하나일 듯 싶다. ‘Ageing’은 우리말로 ‘노화’라고 한다. 老化(노화)란 한자로 보면 알 수 있듯이 ‘늙어간다’는 뜻이다. ‘늙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한창 때를 지나 쇠퇴하다’라는 뜻인데, 사람에게는 ‘중년이 지난 상태가 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즉 노화란 특정한 나이를 지나 몸이 쇠약해져 가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은 듯하다.

영어 ‘Ageing’을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면 ‘노화’라는 말보다는 ‘나이 듦’이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나이 듦이라는 말은 ‘노화’나 ‘늙어감’이라는 말과는 달리, 특정한 연령 이후를 의미하지 않는 듯하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나이 들어간다. 청소년 시절 우리는 되새김질을 하며 성장했다 “어서 빨리 나이 들었으면 좋겠다”라고 ... 나이 들어가는 과정 또한 모두에게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나이 들어가면서 자주 깜박깜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 들어서도 젊은이 못지않게 기억력이 좋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노년의 삶의 모습을 결정하는 데 있어, 선택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이 같은 선택권이 주어져 있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이는 ‘나이 듦’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때라고 본다.

똑같은 방식으로 늙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마다 노화의 속도도 다르고 각자의 독특한 유전적 자질, 대체로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 환경요인, 그리고 개인이 내린 선택으로 생겨나는 요인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난다.

나이 든 사람은 학습능력이나 창의성이 없다?

그렇지 않다. 반대로 꾸준한 학습과 창의성 활동으로 건강하고 활력 있게 장수할 수 있다. 일흔이 훌쩍 넘었음에도 해바라기 씨 심어내듯 스마트폰에서의 스토리입력놀이를 하는 노년 시절의 평생배움은 노년의 폐해를 막아준다고 했다.

노인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담스러운 존재일까?

나이가 들면 유급 활동을 하다 은퇴하게 된다. 그 후로는 누구든 사회에 기여하지 못한 채 부담만 주는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일까? 노인을 짐 같은 존재로 바라볼 때 따라오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우리 또한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는 사실과 우리의 미래 모습이다. 나이 듦이란 누구나 겪는 성장의 과정이다.

누군가 나이 들어가면서 겪는 신체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내적인 성장을 계속 경험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늙었다고 할 수 없지 않는가, 나이부정“에 따른 시각을 정확하게 인식하면서

"동안이시네요." 이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기분이 좋고 흐뭇해지기까지 한다. 우리는 왜 '젊다 혹은 젊어 보인다'는 말에 이렇게 반응하는 것일까?

"나의 미래가 지금의 나보다 못하고, 나이 든 내가 젊은 시절의 나보다 못하다“는 이러한 편견이 '나이 부정'의 키워드가 되었다. 우리 주변의 연령차별을 인식하고 나이 듦에 대해 좀 더 미묘하고도 정확한 시각을 가지도록 격려하고 행동에 나서도록 독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문화에 스며있는 편견 중의 하나인 연령차별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 '청년'을 생각하면 미래, 열정, 도전 등 긍정적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하면 젊음은 긍정적으로 미화시키는 반면 '노년'은 알게 모르게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없게 만드는 문화로 만든다. 대체로 우리는 우리의 미래인 노년을 '추하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으로 퉁치고 싸잡는다. 또한 지레 '나이에 걸맞지 않다'는 편견도 가지고 있다.

노년의 재발견, 모든 사람은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으로 각자 다른 모습으로 그리고 다른 속도로 나이가 든다. 우리 모두를 '노인'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듯이 노년은 혹은 나이 든 우리를 하나의 정형화된 이미지 안에 구겨 넣을 수는 없다.나이가 든다고 자연스럽게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을 통해 얻은 경험들은 지혜를 얻는데 훌륭한 자양분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연령차별이 없는 사회를 향해, 연령차별이라는 편견을 벗어나기 위한 출발점으로 제안하는 것은 '인정'이라 생각한다. 나이 먹는다는 변화과정을 받아들이고 '나이 듦=살아가는 것'이란 사실을 떠올리면서 편견을 깨는 과정을 시작해 보자 이 편견은 꼭 젊은 사람들만 가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잘못도 있다.

.노인장, 어르신이란 표현을 버리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라 칭해 보자. 다만 어떤 사람보다는 나이가 많고 어떤 사람보다는 나이가 적을 뿐이다."라는 점을 마음에 새겨 보자. "'young'이 매력적이라거나 시대를 앞서 간다거나 어리석다는 뜻이 아니듯, 'old'는 추하다거나 시대에 뒤처진다거나 현명하다는 뜻이 아니다."라는 것도. 이러함 뜻에서 먼저 앞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부여해보자. 노년의 인생을 퉁치지 말고, 싸잡는 사회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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