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달식 논설위원

인문학 강사 윤소정의 [인문학 습관]을 읽다가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왜냐하면 에릭슈미트(Eric Schmidt)회장이 구글에 있을 때 ‘앞으로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겠다!’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내가 대리 시절 만들었던 진리의 변천사 마지막 단계인 노우왓(Know-What)과 일치하는 맥락이었기 때문이었다.

진리(眞理)란 한자어로 ‘참된 이치’이고, 독일어로 하면 바하잇트(Wahrheit) 즉 ‘사실과 일치하는, 진실한, 참된’이란 형용사를 명사화한 것이다. 영어의 Truth, 라틴어 Veritas 등에서는 독일어와 일치한다. 그런데 헬라어로 하면 알렉떼이아(aletheia)는 닫혀있지 않음(unclosedness)으로 약간 뉴앙스의 차이가 있다. 진리를 도(道)라고 본다면 로고스(Logos)가 더 가깝다. 웹스터(Webster) 사전에 의하면 로고스는 Reason that in ancient Greek philosophy is the controlling principle in the universe 라고 정의되어 있다. 즉 ‘고대 헬라 철학에서 우주에서의 지배 원리의 근거’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노우와이(Know-Why)’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왜?’라고 물어서 답을 찾는 진리의 정의이다. 흔히 자기를 주변에 잘 나가는 사람과 비교할 때 독백처럼 하는 답이 없는 질문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왜 그 친구는 부자이고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는데, 난 가난하고 등등의 궁금증을 비롯하여 삶이란 무엇인가 등의 철학적 질문까지 모든 세상을 지배하는 문제들이 해당한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적인 답을 제외하고 구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특히 1, 2차 대전으로 인한 절망과 신에 대한 불신은 실존주의를 태동시켰는데, 이것은 노우와이(Know-Why)를 버리게 된 원인이 된다. 이 실존이라는 단어가 Exist인데 Ex는 ‘밖’을 의미하고 Ist는 ‘있다’는 의미이며 즉 ‘참 진리의 밖에 있는 것’이 진리가 된다. 철학자 프랜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에 의하면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SørenAabye Kierkegaard)는 이 선 즉 ‘절망의 한계선(Line of despair)’을 넘은 사람이다.

근원은 모르나 존재하는 것이 진리가 된 것이다. 예를 들어 금이 왜 그런지 모르나, 전기가 잘 통하고 잘 늘어나는 특성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은 고유성(Property)이라고 하여 진리가 되었다. 이것이 노하우(Know-How) 이다. 왜 그러한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떻게 하다 보니 발견한 것이 진리가 된 것이다. 내가 전공한 공학이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철학적 사고의 틀이 변경된 연유이다.

1980년대 초에는 이 ‘노하우(Know-How)’가 갓 태어난 전문용어였고,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은 유식하게 여겨졌었다. 요즘의 ‘인더스트리 4.0’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근원을 알 수 없기에 제약이라 던지 신 물질 개발과 같이 무수한 경우의 수가 있는 경우, 이 노하우가 돈이 되었다. 답을 알면 쉽지만, 그 이전에는 불가능한 듯이 보이는 콜럼버스 달걀과 같은 것들이 노하우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노하우(Know-How)’시대를 지나 ‘노우훼어(Know-Where)’ 시대로 변하고 있다. 즉 어떻게 하는지는 많은 정보가 어딘가에서 이미 생성되었고 계속 전문가들에 의해 생성되고 있으며 제공자들로 인해 공유되어가고 있어, 이제는 ‘어디에 있느냐? 또는 누가 가지고 있느냐?’를 먼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 진리가 되고 있다.

그 이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 노하우는 많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닭볶음을 만드는 법이나 시계 줄을 스스로 집에서 줄이는 것과 같은 실제 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이 네이버나 구글과 같은 검색 사이트를 통해 검색되게 되었다. 아직도 가치가 높은 것들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사제 폭탄을 만드는 법과 같이 위험한 것들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앞으로 더 자료가 공개되고 유료 공개를 통해 데이터베이스가 많아지며, 검색 엔진과 SNS의 발달로 하나의 질문에 대해 몇 가지의 유력한 답들이 얻어질 것이다.

그러한 경우 이제 ‘노우후이치(Know-Which)’ 가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1천억 원이 시험 비용으로 들어가는 경우 다양한 방법을 모두 시행해보고 참된 결과 즉 자기가 원하는 조건에서 바로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진리가 될 것이다. 지금도 극단적인 제안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암을 수술해야 하나 그대로 두고 자연 치유를 해야 하나? 또 건강을 위해 금식을 해야 하나 아니면 약을 먹어야 하나? 등등 간단하게 선택할 수 없는 주장들이 경험치를 가지고 경쟁하고 있다.

그러다가 빅데이터(Big Data)를 비롯해 다양한 전문적인 지식의 조합과 시뮬레이션에 의해 미래에는 스스로 입증(Self-verification)하는 시대가 되면, 이것도 슬슬 꼬리를 내릴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무엇을 질문할지가 참된 가치요 진리가 되는 것이다. 즉 ‘노우왓(Know-What)’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앞에서 설명한 에릭슈미트가 말한 질문이 경영의 대상이 되고 가치가 되는 시대가 충만하게 성숙되면, 인간은 다시 ‘노우와이(Know-Why)’를 추구하는 세력과 충돌하게 되고 지구의 종말이 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20대 말에 해보았었다.

현대는 원래의 참 진리를 무시하고 돈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인정하며 살아가고 돈이 진리가 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여전히 많이 있고, 행복을 위해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하나 그 이상에서는 돈은 독이 될 수도 있다. 한때 많이 공유되었던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남긴 말이 이를 공감하게 하고 있다.

사랑받기를 원하면서 상대방에게 어떠한 것이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정의해 주지 않는 것은 엄청난 폭력이라는 말이 있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당신도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위협하고 마지막에 크게 후회할 수 있다. 생각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살아가도록 강요하는 듯 하는 이 시대에서, 무엇이 진리이고 또 이 진리는 당신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인생의 격한 소용돌이가 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제는 ‘노우와이(Know-Why)’를 다시 되돌아보고 진정한 이유,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현재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가?’를 묻고 우리를 설계하고 만드신 그분께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요?

* 본 칼럼은 에세이[너 그러면 행복하겠니]에서 발췌한 것이다.

장 달식 / 시인, 공학박사, 오페라 작곡가,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부회장, 대성나찌유압공업 대표이사, 기독대학인회(ESF) 이사장

에세이: [너 그러면 행복하겠니],

시집: [카이로스], [크로노스는 카이로스를 이기지 못하고],

오페라: [미라클], [아쿠아 오 비노], [당신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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