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식 논설위원

적과 흑은 "날카로운 심리 분석과 사회 비판으로 심리주의 소설의 전통을 수립하였으며 19세기 프랑스 근대 소설의 창시자" 불리는 스탕달(1883-1842)의 작품으로 신분과 계급의 벽을 넘어 비상을 시도한 청년의 욕망과 사랑 그리고 죽음을 그린 낭만주의가 팽배하던 시대에 사실주의의 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적과 흑의 시대상은 1820대로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를 거쳐 왕정복고의 시기이며 1830년에 출간 되었다. 나폴레옹 추종자였던 스탕달이기에 나폴레옹 시대를 그리워하는 대목들이 작품서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왜 제목이 적과 흑일까 였는데 적(赤)은 군복, 흑(黑)은 성직복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당시 출세할 수 있는 계급을 나타낸다고 한다. 가난한 재목상 소렐씨에게는 아들 세 명이 있었는데 첫째,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사업을 돕고 있었으나, 셋째 아들 줄리앙은 그런 일은 자기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듯 항상 책만 읽고 있었다.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지적인 신학생 줄리앙 소렐은 평민의 신분에서 벗어나길 갈망한다. 그의 위대한 귀감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처럼 전장에서의 활약을 통해 출세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였기에 그는 차선책을 찾아내었는데, 바로 상류층과 귀부인들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는 것이었다.

베리에르의 시장은 레날 씨는 오십에 가까운 나이고 레날 부인은 서른 살이었다. 아이는 셋이 있었다. 그러던 중 줄리앙은 레날씨 댁으로 라틴어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된다. 가난한 줄리앙에게 레날 부인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차츰 둘의 애정은 깊어간다. 줄리앙은 출세에 대한 야심으로 레날 부인을 이용하려고 했으나 진짜로 사랑에 빠진다. 둘의 관계는 하녀 엘리자에게 발각되어 레날 씨에게 알려지고, 레날 부인과의 염문설이 퍼지자 줄리앙은 가정교사를 그만두고 신학교로 도피하여 라틴어 실력을 인정받아 늙은 대주교의 흠모를 받는 성직자가 되었는데, 순전히 출세를 위한 발판이었다. 결국 그는 파리 권력의 중심인 라 몰 후작의 개인 비서가 되고 그의 반항적이면서 자존심 강한 딸 마틸드를 유혹하는데 성공한다. 마틸드는 임신하게 되고 라 몰 후작은 어쩔 수 없이 줄리앙을 귀족신분으로 만들기로 결정, 거액의 돈과 영지를 물려준다.'라 베르네이'라는 새로운 성까지 얻고 기병대 중위로 임관하여 출세 가도의 첫발을 내딛은 순간, 라 몰 후작의 집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내막을 폭로하는 레날 부인의 고발이었다. 분노한 라 몰 후작은 딸에게 결혼을 취소하지 않으면 의절하겠다며 파리를 떠나버렸고, 딸은 줄리앙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줄리앙은 분노로 이성을 잃고 베리에르로 달려가 미사에 참례 중이던 레날 부인의 어깨를 권총으로 쏘고 감옥에 갇혀 사형 집행을 기다린다. 그의 지인들 중 친구 푸케를 비롯한 일부 지인이 그를 필사적으로 변호해주려 하지만 레날 부인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 생각한 줄리앙은 절망에 빠져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변호사와 심지어는 재판장 앞에서 자신의 혐의를 계획적인 범죄라고 거짓으로 말한다. 그러나 레날 부인은 살아있었고, 줄리앙은 레날 부인과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다시 만나 서로 모든 진심을 나누게 된다. 레날 부인은 자신을 위한다면 항소하라고 하고 레날 부인이 죽지 않았으므로 살아날 수도 있었지만 담담히 감옥에 있다가 자신의 모든 것을 일장춘몽으로 흘려보내며 사형당하는 결말을 맞는다.줄리앙이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이 레날부인이었다.

줄리앙이 감옥에 가 있을 때, 그의 아내 마틸드에 대해 묻는 레날 부인에게 줄리앙은 "(마틸드가 아내인 것은) 표면 상으로만 그렇습니다. 마틸드는 내 아내이지만, 애인은 아닙니다." 라는 희대의 명대사를 던진다. 즉 법적인 아내는 마틸드이지만 허울뿐인 존재이고, 레날 부인이 진심으로 사랑을 나누는 애인이라는 것이다. 레날 부인은 줄리앙의 사형 집행 5일 후 그 어떤 병의 징후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사망한다. 줄리앙은 그녀에게 계속 살아 달라며 신신당부했는데, 레날 부인은 그 유지는 충실히 지켜 스스로 죽진 않았지만 마치 운명처럼 줄리앙과 죽음을 맞이했다. 줄리앙은 출세를 위해서만 사랑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진실한 사랑이 있었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입체적인 남자 인물과 여자 인물들을 내세워 인간 세상에서 실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다.18세기 초반의 줄리앙은 출세를 위해 달리다가 멈추고 말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비교해 본다. 계층 이동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생존은 더욱 힘들어지고, 청년들은 3포를 넘어 4포, 5포, 포기하는 것들이 점점 늘어난다. 결혼을 포기하고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 주택 구입을 포기하고, 취업을 포기한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4차 산업시대에 계층의 상승은 과거보다 더욱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단 맛을 실 컷 누리고 있는 카르텔은 여전하다. 그들은 계속 자신들만의 리그를 유지하고 있다. 귀족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자녀의 스펙을 위조하고, 부동산 투기는 망국의 병이라고 외치면서 뒤로는 자신 들이 더 열을 올린다.

권력을 잡기위해 어떤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더럽고 추악한 비리 연루 뉴스가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서민을 위한다고 외치며 잘못된 점을 비판하고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그 목소리 뒤에 숨어있는 위선에 비해 작품의 주인공은 출세의 욕망의 절벽 끝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누가 더 양심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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