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식 논설위원

윤오영(1907-1976)은 50살이 넘은 나이에 수필을 처음 발표하기 시작해 이후 2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하여 문단에 화제가 된 분으로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이므로 잡문이나 과는 구분되어야 하며 타 장르의 작가들처럼 습작과 문장 수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신 분이다. 방망이 깎던 노인은 1976년 수필집 '방망이 깎던 노인'으로 발표된 작품으로 40여 년 전 만났던 방망이 깎는 노인의 모습을 회상하며 조급한 세태에 밀려 사라져가는 전통과 장인 정신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회고적 수필이다.

이 작품은 젊은 시절 화자가 우연히 길에서 만났던 방망이 깎는 노인에 대한 회고담으로 시작한다. 화자가 아내를 주려고 다듬잇방망이를 사려고 할 때, 전차 역 앞에서 방망이 깎는 노인을 만나 방망이를 깎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노인은 값을 꽤 높이 불렀고 화자는 속으로는 못마땅해 하지만 어쩔 수없이 깎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노인은 처음에는 빨리 깎는 듯 했으나 나중에는 느릿느릿 깎았다. 이를 본 화자는 화를 내고, 노인은 아직 덜 깎았다며 “다른 데서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라고 한다. 노인은 방망이 하나를 깎는데긴 시간과 온갖 정성을 들이는데 화자는 방망이를 받았지만 전차를 놓친 후였다. 그러나 집에 간 화자는 오히려 노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아내가 방망이를 보며 이렇게 딱 알맞게 깎긴 방망이는 찾기 힘들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노인은 바로 방망이의 ‘장인’이었던 것이다.현대의 세상은 뭐든지 빠르다. 무엇이든 빨리 만들어 내고 지나면 사양화 된다. 그래야 기업도 매출을 올리니 돈을 벌고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도 수시로 소비의 쾌락을 맛본다. 빠름은 현대를 대표하는 상품이고 우리나라는 빠름으로 IT산업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방망이를 빨리 깎으라고 재촉하자 노인이 하는 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면"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우리의 세상은 기다림이 없다. 지하철을 타려고 하면 내리기도 전에 사람 들이 올라타 불쾌감을 주기도 하고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엄청 긴 시간으로 느껴져 짜증내기 일쑤다. 버스 기사는 정해진 시간 내에 종점에 도착하기 위해 악셀레이터와 브레이크를 수시로 변동한다.

노인들이 출, 퇴근시간에 버스를 타면 안전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만사에 조급하다. 프로젝트 기안을 지시해 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됐느냐고 재촉하는 상사, 진짜 피곤한 스타일이다.남녀 간의 사랑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그렇다. 서로 알아갈 시간도 없이 만남과 헤어짐이 총알이다. 자신의 이익과 조건을 따지기 바쁘니 유대관계가 형성될 리 없다. 빠름이 가치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느림의 미학이 주는 안정감과 신뢰, 기쁨을 찾는다. 고객 만족을 최고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고객의 요구에 대해 물품 납기일을 맞추지 못한 것에 비유하자면 방망이 깎는 노인의 잘못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더 좋은 품질로 최종소비자인 화자의 아내를 100% 만족시킴으로써 노인은 단점을 상쇄했다. 이로써 화자도 기분이 좋아지고 조급함을 후회하지 않았나.

장인 정신과 직업 정신이 날로 희미해져 가는 사회, 급박하고 메마른 사회에서 또 언제 볼지도 모르는 화자에게 물건을 팔기 보다는 자신의 정성을 선물한 노인에게서 느림을 배워야할 이유다. 앞에선 차가 빨리 가지 않는다고 빵빵 거리며 심지어는 욕설을 내뱉고 내려서 폭행을 하기까지 하는 여유없는 세상이다. 방망이를 깎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도 서두름의 마음, 화를 참지 못하는 조급함, 타인에 대한 배려없음 등 나쁜 마음을 깎아내는 정성이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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